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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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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興公 作庾公誄文한대 多託寄之辭注+① 綽集載誄文曰 “咨予與公, 風流同歸. 擬量託情, 視公猶師. 君子之交, 相與無私. 虛中納是, 吐誠誨非. 雖實不敏, 敬佩弦韋. 永戢話言, 口誦心悲.” 旣成 示庾道恩하니 庾見하고 慨然送還之曰
先君與君 自不至於此注+② 徐廣晉紀曰 “庾羲, 字叔和, 亮第三子. 拔尙率到, 位建威將軍․吳國內史. 道恩, 羲小字.”니이다하다
【頭註】
王云 “孫多穢行, 故又受此辱.”
應登云 “惡其自托諂交.”


11-20 유공庾公(유량庾亮)에 대한 뇌문誄文을 지었는데 아부하는 말이 많았다.注+① ≪손작집孫綽集≫에 실려 있는 뇌문誄文은 다음과 같다.
“아, 나와 공은, 풍류가 일치하였네.
〈공의 인품을〉 헤아려 〈나의〉 마음을 기탁했으니, 〈나는〉 공을 스승처럼 여겼지.
군자의 교제는, 서로 사심이 없으니,
마음을 비워 옳음을 수용하고, 진실을 토로하여 잘못을 뉘우쳤네.
〈나는〉 비록 실로 똑똑치 못하지만, 삼가
영원히 〈공의〉 화언話言(훌륭한 말씀)을 간직하니, 입으로 읊조리자니 마음이 슬퍼지네.”
〈뇌문이〉 완성된 후에 〈유공의 아들〉 유도은庾道恩(유희庾羲)에게 보여주자, 유도은이 보고는 탄식하고 〈손흥공에게〉 돌려보내면서 말하였다.
“선친과 당신은 본래 이러한 관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注+서광徐廣의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유희庾羲숙화叔和로, 유량庾亮의 셋째 아들이다. 출중하고 고상하며 진솔하였다. 지위가 건위장군建威將軍오국내사吳國內史에 올랐다. 도은道恩은 유희의 어릴 때 이름이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손작孫綽에게 더러운 행실이 많았기 때문에 또 이러한 치욕을 당한 것이다.
유응등劉應登:손작이 스스로 아첨의 교제에 의탁한 것을 미워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孫興公(孫綽) : 314~371. 太原 中都 사람으로, 字는 興公이다. 長樂侯를 襲封하고, 晉나라 太學博士․尙書郞․章安縣令․永嘉太守 등을 역임한 뒤에 哀帝 때에 散騎常侍․領著作郞이 되었다. 洛陽으로 천도하려는 大司馬 桓溫의 계획을 저지하고, 王羲之의 蘭亭 모임에 참여하였다. 그는 詩文을 잘 지었는데, 특히 賦를 잘 지어 〈遂初賦〉․〈遊天台山賦〉 등을 남겼다.
역주2 弦韋를…지녔네 : ‘현위’는 활시위와 부드러운 가죽으로, 緩急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수정한다는 뜻이다. 戰國시대 魏나라 西門豹는 자신의 성질이 급한 것을 단점으로 여겨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 느긋하게 처신하고, 董安于는 자신의 성질이 느긋한 것을 단점으로 여겨 활시위를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 급하게 처신하였다.(≪韓非子≫ 〈觀行〉)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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