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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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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昭略注+① 南史曰 “昭略, 字茂隆, 吳興武康人. 祖慶之, 宋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 父文叔, 侍中. 昭略性狂雋, 使酒使氣. 齊高帝賞之, 以爲中書郞, 進侍中. 永元中, 被召入華林省, 飮藥酒死.” 與徐孝嗣諸人으로 同賜死華林省注+② 南齊書曰 “孝嗣, 字始昌, 東海剡人. 祖湛之, 宋司空, 父聿之, 著作郞. 孝嗣幼而挺立, 風儀端簡, 官五兵尙書. 明帝崩, 受遺託. 永元初, 帝失德稍彰, 不敢諫諍, 內懷憂恐. 有勸行廢立者, 孝嗣遲疑久之, 謂‘無用干戈, 須少主出遊, 閉城門, 集百僚, 議廢之’, 未決. 群小稍憎孝嗣, 勸帝誅之, 召孝嗣等入華林省, 遣茹法珍賜藥酒. 孝嗣飮至斗餘, 方卒.”할새 孝嗣語昭略曰
見卿하니 使人思夏侯太初라하니
昭略曰
明府憶夏侯 便是方寸不能都豁이니 下官 見龍逄 比干하면 欣然相對注+③ 符子曰 “桀觀炮烙於瑤臺, 顧龍逄曰 ‘樂乎?’ 曰 ‘樂.’ 桀曰 ‘觀刑而樂, 何無惻隱乎?’ 對曰 ‘刑固苦矣, 然天下苦之, 而君樂之. 君, 心也, 臣爲股肱, 孰有心悅而股肱不悅者?’ 桀曰 ‘聽汝之諫, 得, 我功之, 不得, 我刑之.’ 逄曰 ‘觀君冠危石而履春冰也, 未有冠危石而不壓․履春冰而不陷者.’ 桀曰 ‘汝知我亡, 而不自知其亡. 請就炮烙, 使君觀汝亡, 以知我之不亡.’ 逄乃歌曰 ‘休哉. 造化者勞我以生, 而休我以炮烙也.’ 遂赴炮烙.” 史記曰 “帝紂好酒淫樂, 嬖於婦人, 重刑辟, 有炮烙之法. 諸侯多叛, 王子比干諫, 弗聽, 微子乃與太師․少師謀, 遂去. 比干曰 ‘爲人臣者, 不得不以死爭.’ 乃强諫, 紂怒曰 ‘吾聞聖人心有七竅.’ 剖比干, 觀其心.”하리이다하다
【頭註】
王云 “符子是後人書, 不當引証.”


13-23 심소략沈昭略注+① ≪남사南史≫ 〈심소략열전沈昭略列傳〉에 말하였다. “심소략은 무륭茂隆으로, 오흥吳興 무강武康 사람이다. 조부 심경지沈慶之는 〈남조南朝나라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부친 심문숙沈文叔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심소략은 성품이 자유분방하고 영특했으며, 술주정을 부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였다. 고제高帝(소도성蕭道成)가 그를 칭찬하여 중서랑中書郞으로 삼았다가 시중侍中으로 승진시켰다. 〈동혼후東昏侯 소보권蕭寶卷영원永元 연간(499~501)에 화림성華林省에 불려 들어가 독주毒酒를 마시고 사망하였다.” 서효사徐孝嗣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에서 사사賜死되었을 때,注+소자현蕭子顯의 ≪남제서南齊書≫ 〈서효사열전徐孝嗣列傳〉에 말하였다. “서효사는 시창始昌으로, 동해東海 사람이다. 조부 서담지徐湛之는 〈남조南朝나라 사공司空을, 부친 서율지徐聿之저작랑著作郞을 역임하였다. 서효사는 어릴 때부터 몸가짐이 바르고 곧았으며 풍모가 단정하고 의젓했으며, 오병상서五兵尙書를 역임하였다. 〈남조南朝 명제明帝(소란蕭鸞)가 붕어할 때 유탁遺託을 받았다. 영원 연간 초반에 황제(동혼후)의 실덕失德이 점차 드러났는데도 감히 간쟁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만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어떤 사람이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운 황제를 세우라고 권유했는데, 서효사는 오랫동안 망설이면서 결정하지 못한 채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소주少主(동혼후)가 유람을 떠났을 때 성문을 닫고 백관을 소집하여 폐위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여러 소인배들이 점차 서효사를 미워하여 황제에게 그를 주살하라고 권유하자, 〈황제는〉 서효사 등을 화림성에 불러들여 여법진茹法珍을 파견하여 독주를 내렸다. 서효사는 〈독주를〉 한 말[] 남짓이나 마시고서야 죽었다.” 서효사가 심소략에게 말하였다.
“그대를 보니, 나로 하여금 를 생각나게 하네.”
심소략이 말하였다.
께서 하후태초를 떠올리신 것은 바로 마음이 전혀 활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관下官은 〈죽은 뒤에〉 관용방關龍逄비간比干을 만난다면 흔쾌히 〈그들을〉 마주할 것입니다.”注+③ ≪부자符子≫에 말하였다. “〈나라〉 걸왕桀王에서 을 구경하면서 관용방關龍逄을 돌아보면서 ‘즐거운가?’ 하니, 〈관용방이〉 ‘즐겁습니다.’ 하였다. 걸왕이 ‘형벌을 보면서 즐겁다니, 어찌 측은한 마음이 없는가?’ 〈관용방이〉 ‘형벌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천하가 그것을 고통스러워하나 군주가 즐거워하시니, 군주는 심장과 같고 신하는 팔다리와 같으니 어찌 심장이 즐거워하는데 팔다리가 기뻐하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걸왕이 ‘너의 간언을 들어보고 내가 이해하면 너에게 상을 내리고, 이해하지 못하면 너에게 형벌을 내리겠다.’ 하자, 관용방이 ‘임금님을 보니,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봄날의 〈얇은〉 얼음을 밟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다면 압사 당하지 않는 자가 없고 봄날의 얼음을 밟고 있다면 빠져 죽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하였다. 걸왕이 ‘너는 내가 죽을 줄은 알면서도, 네가 죽을 것이라는 것은 스스로 모르는구나. 포락형에 나아가 군주로 하여금 네가 죽는 것을 구경함으로써 내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보라.’ 하니, 관용방이 ‘끝났구나. 노래하고는 마침내 포락형에 나아갔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 말하였다.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은 술을 좋아하고 방탕하게 즐기며 부인들을 총애하고 형벌을 과중하게 하여 포락과 같은 형법을 만들었다. 제후들이 대부분 등을 돌리자, 왕자 비간比干이 간언했으나 〈주왕이〉 따르지 않자, 미자微子태사太師소사少師와 논의하여 마침내 떠났다. 비간은 ‘남의 신하가 된 자는 죽음으로써 간쟁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는 마침내 강하게 간언하였다. 주왕이 화를 내면서 ‘내가 들으니,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고 한다.’ 하고는 비간의 〈배를〉 갈라 그 심장을 살펴보았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부자符子≫는 후대인이 쓴 책이니, 증거로 삼기 위해 인용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가 아닌 ≪何氏語林≫에 있으므로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華林省 : 南朝 齊나라 때 淸溪宮이 있었는데, 이후에 華林苑으로 개명하였다.(≪世說音釋≫)
역주3 夏侯太初(夏侯玄) : 209~254. 沛國 譙縣 사람으로, 征南大將軍 夏侯尙의 아들이고 右將軍 夏侯霸의 조카이며 大將軍 曹爽의 외사촌 아우이다. 그는 조상이 위나라의 國政을 담당했을 때 武官의 선발을 주관하고 征西將軍과 雍凉州諸軍事都督이 되었는데, 司馬氏들에게 조상이 죽임을 당한 뒤 하후현도 羽林監으로 좌천당하였다. 李豐․張緝 등과 함께 대장군 司馬師를 모살하려 했는데 사전에 발각되어 주살당했다.
역주4 明府 : 明府君의 약칭으로, 漢魏시대 이후 太守․縣令․牧․尹의 존칭으로 사용하였다.
역주5 瑤臺 : 옥으로 장식한 화려한 누대이다.
역주6 炮烙刑 : 夏나라 桀王과 殷나라 紂王이 시행한 酷刑의 하나이다. ≪古列女傳≫ 〈殷紂妲己〉에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아래에 숯불을 피워 놓은 다음 죄 지은 자로 하여금 기둥 위를 걷게 하였는데, 번번이 숯불 속으로 떨어지니 달기가 웃었다. 이 형벌의 이름을 포락형이라고 한다.” 하였다.
역주7 조물주가……하시는구나 : ≪莊子≫ 〈大宗師〉에 “대자연은 형체를 주어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며,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夫大塊 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했는데, 이 말을 원용한 것이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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