殷浩
가 始作揚州
注+① 浩别傳曰 “浩, 字淵源, 陳郡長平人. 祖識, 濮陽相, 父羡, 光祿勲. 浩少有重名, 仕至揚州刺史․中軍將軍.” 中興書曰 “建元初, 庾亮兄弟何充等相尋薨, 太宗以撫軍輔政, 徵浩爲揚州, 從民譽也.”에 劉尹
이 行
이라가 日小欲晚
이면 便使左右取襆
하니 人問其故
한대 答曰
6-20
은호殷浩가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된 처음에,
注+① 〈은호별전殷浩別傳〉에 말하였다. “은호殷浩는 자字가 연원淵源이고 진군陳郡 장평長平 사람이다. 조부 은식殷識은 복양상濮陽相이었고, 부친 은선殷羨은 광록훈光祿勲이었다. 은호는 젊어서부터 명망이 두터웠고 벼슬은 양주자사揚州刺史․중군장군中軍將軍에 이르렀다.”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건원建元(343∼344) 초에 유량庾亮 형제와 하충何充 등이 연이어 사망하자 태종太宗(동진東晉 간문제簡文帝 사마욱司馬昱)이 무군장군撫軍將軍으로서 정사를 보좌하였는데, 은호殷浩를 초빙하여 양주자사로 삼았으니, 이는 백성의 여망輿望에 따른 것이다.” 유윤劉尹(
유담劉惔)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려고만 하면 곧 시종에게 이불을 가져오게 하였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가 답하였다.
“자사刺史가 엄하여 감히 밤에 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注
◦ 유신옹劉辰翁:복襆은 오늘날 사람들의 보자기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