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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補】
영令인
원의袁毅는 정무를 처리할 때 탐욕스럽고 부정하게 하고 조정의 고관에게 선물을 바쳐 영예를 구하였다.
注+① ≪진서晉書≫에 “진군陳郡의 원의袁毅가 격령鬲令이 된 적이 있었는데, 탐욕스럽고 부패하였으며 공경公卿에게 뇌물을 바쳐 헛된 영예를 구하였다.” 하였다. 한번은
산거원山巨源(
산도山濤)에게 실 100근을 보냈는데 산거원이 유별나게 보이고 싶지 않아 받아서 대들보에 매달아두라고 명하였다. 나중에 원의의 〈부정한〉 일이 드러나 여러 관원을 조사하게 되어 관리가 산거원에게 왔다. 대들보 위에서 실을 찾았는데 이미 몇 년이 지나 먼지가 앉았고
봉인封印은 〈뜯지 않고〉 그대로였다.
注+② 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산도山濤는 자字가 거원巨源이고, 하내河內 회懷 사람이다. 부친 산요山曜는 원구령寃句令을 지냈다. 산도는 젊어서부터 기량器量이 있었다. 17세 때 친족이 진晉 선제宣帝(사마의司馬懿)에게 ‘산도는 경제景帝(사마사司馬師)․문제文帝(사마소司馬昭)와 함께 천하의 기강을 잡을 사람입니다.’ 하니, 선제가 농담으로 ‘경은 한미한 가문인데 어떻게 이렇게 호방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를 좋아하였으며 혜강嵇康과 친하였다.
하내종사河內從事였을 때 석감石鑒과 함께 역참에 묵게 되었는데 산도가 밤에 일어나 석감을 깨우며 말하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잠을 잔단 말입니까. 태부太傅(사마의司馬懿)가 병으로 누운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석감이 ‘재상이 3일 동안 조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황제가 를 주어 집에 돌아가게 하니, 그대는 어찌 걱정하는가?’ 하니, 산도가 ‘아, 석생石生은 말발굽 사이에서도 무사하겠구나.’ 하고서 과연 이 생기자 마침내 몸을 숨기고 세상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이부상서吏部尙書․복야僕射․태자소부太子少傅․사도司徒를 지냈다. 시호는 강후康侯이다.”산도山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