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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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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充 著論衡成이어늘 中土未有傳者注+① 袁山松後漢書曰 “王充, 字仲任, 會稽上虞人. 幼聰明, 詣太學, 觀天子臨辟雍, 作六儒論.” 謝承後漢書曰 “謝夷吾薦充曰 ‘充之天才, 非學所加. 雖前世孟軻․卿, 近世揚雄․劉向․司馬遷, 不能過也.’” 蔡中郞 到江東得之 歎爲高文하고 恒秘翫하여 以爲談助이라 及還北 諸公 覺其談更遠이러니 檢求帳中하여 果得論衡一部注+② 袁山松後漢書曰 “其後, 王朗爲會稽太守, 又得其書, 時人稱其才進. 或曰 ‘不見異人, 當得異書.’ 問之, 果以論衡之益.” 抱朴子曰 “時人, 在蔡邕帳中, 搜得論衡, 捉數卷持去. 邕丁寧之曰 ‘唯我與爾共之, 勿廣也.’”


7-9【왕충王充이 ≪논형論衡≫을 저술하여 완성했는데, 중원지역에서는 아직 전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注+원산송袁山松의 ≪후한서後漢書≫에 말하였다. “왕충王充중임仲任으로, 회계會稽상우上虞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태학太學에 입학한 뒤에 천자가 벽옹辟雍(천자의 태학)에 행차하는 것을 보고는 〈육유론六儒論〉을 지었다.”
사승謝承의 ≪후한서後漢書≫에 말하였다. “〈왕충과 동향인〉 사이오謝夷吾장제章帝에게 왕충을 추천하면서 ‘왕충의 천부적인 재능은 배움으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비록 전시대의 맹가孟軻(맹자孟子)와 순경荀卿(순자荀子), 근세의 양웅揚雄유향劉向사마천司馬遷이라도 그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채중랑蔡中郞(채옹蔡邕)이 강동江東에 가서 그 책을 얻고는 훌륭한 문장이라고 감탄하여 항상 비밀리에 읽음으로써 담론談論의 보조자료로 삼았다. 〈채중랑이〉 북쪽으로 돌아왔을 때 여러 공들은 그의 담론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고 느꼈는데, 〈채중랑의〉 장막 안을 뒤졌더니 과연 ≪논형≫ 한 부가 발견되었다.注+원산송袁山松의 ≪후한서後漢書≫에 말하였다. “그 이후에 왕랑王朗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어 또 ≪논형論衡≫을 얻어 〈탐독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의 재주가 향상되었다고 칭찬하였다. 혹자가 ‘신이神異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라면 특이한 책을 얻은 것이 틀림없다.’ 하고는 왕랑에게 물었더니, 과연 ≪논형≫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포박자抱朴子≫에 말하였다.
왕충王充왕충王充


역주
역주1 당시……하였다 : 현재의 ≪포박자≫에는 이 내용이 없다.
역주2 : 萬曆 14년본과 安永本에는 ‘孫’으로 되어 있다. 이는 漢나라 사람들이 宣帝의 이름 劉詢의 ‘詢’ 발음을 避諱하여 ‘孫’으로 바꾼 것이다.(≪世說箋本≫)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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