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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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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太尉注+① 夷甫也. 不與庾子嵩交어늘 卿之不置 王曰
君不得爲爾라하니
庾曰
卿自君我하고 我自卿卿하니 我自用我法이요 卿自用卿法이라하다
【頭註】
劉云 “似狎爾, 非方正.”
李云 “言語, 已非方正.”


11-2 왕태위王太尉注+① 〈왕태위王太尉는〉 왕이보王夷甫이다. 유자숭庾子嵩과 〈친밀히〉 교유하지 않았는데, 유자숭은 〈왕태위를 부를 때〉 ‘’이라는 호칭을 그만두지 않았다. 왕태위가 말하였다.
은 그렇게 부르면 안 됩니다.”
유자숭이 말하였다.
은 나를 으로 호칭하고 나는 그대를 으로 호칭하니, 나는 나의 방법을 사용하고 그대는 그대의 방법을 쓰는 것이오.”
두주頭註
유진옹劉辰翁:〈유애庾敱의 태도는〉 친압親狎한 듯하니, 방정한 행실이 아니다.
이지李贄:〈이 내용은〉 언어에 관한 것이니, 이미 방정한 행실이 아니다.


역주
역주1 王衍 : 256~311. 瑯琊 臨沂 사람으로, 字는 夷甫이며, 平北將軍 王乂의 아들이자 司徒 王戎의 사촌아우이다. 西晉시대 黃門侍郞․尙書令․司空․司徒 등을 역임하였다. 永嘉 5년(311) 東海王 司馬越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영구를 호송하여 동해로 돌아오는 도중에 石勒(後趙의 건국자)에게 잡힌 뒤에 서진의 舊臣들과 함께 생매장 당하였다.
역주2 庾敱(유애) : 262~311. 潁川 鄢陵 사람으로, 字는 子嵩이다. 諫議大夫 庾峻의 아들로, 西晉시대 吏部郞과 太傅를 역임하고, 東海王 司馬越의 參軍이 되었다. 永嘉 5년(311) 石勒(後趙의 건국자)에게 잡힌 뒤에 王衍 등과 함께 피살되었다.
역주3 君(당신) : 卿보다 정중한 호칭이다.
역주4 卿(그대) : 본래 고급 관원을 이르는 표현으로, 이후에 상대방에 대한 美稱으로 사용되었는데, 南北朝시대에는 ‘爾(너)’나 ‘汝(너)’와 같이 친밀한 관계인 동년배나 그 이하의 사람에게 사용하였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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