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司州
가 至吳興印渚中
하여 看
注+① 王胡之別傳曰 “胡之, 字脩齡, 琅邪臨沂人, 王廙之子也. 歷吳興太守, 徵侍中․丹陽尹․秘書監, 並不就. 拜使持節․都督司州諸軍事․西中郞將․司州刺史.” 吳興記曰 “於潛縣東七十里, 有印渚, 渚傍有白石山, 峻壁四十丈. 印渚, 蓋衆溪之下流也. 印渚, 已上至縣, 悉石瀨惡道, 不可行船. 印渚已下, 水道無險, 故行旅集焉.”하고 歎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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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주王司州(
왕호지王胡之)가
오흥吳興의
인저印渚 가운데에 이르러 〈풍경을〉 보고는
注+① 〈왕호지별전王胡之別傳〉에 말하였다. “왕호지王胡之는 자字가 수령脩齡이고 낭야琅邪 임기臨沂 사람으로 왕이王廙의 아들이다. 오흥태수吳興太守를 거쳤으며 시중侍中․단양윤丹陽尹․비서감秘書監의 자리에 불렀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사지절使持節․도독사주제군사都督司州諸軍事․서중랑장西中郞將․사주자사司州刺史에 제수되었다.”
에 말하였다. “잠현潛縣 동쪽 70리 되는 곳에 인저印渚가 있고 인저 옆에 백석산白石山이 있는데 험준한 절벽의 높이가 40장丈이다. 인저는 아마도 여러 계천溪川의 하류일 것이다. 인저 위로 잠현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돌투성이의 여울로 험한 길이여서 배가 다닐 수가 없다. 인저 아래로는 물길에 험한 곳이 없기 때문에 나그네들이 여기에 모인다.” 감탄하며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해와 달도 맑고 깨끗한 듯 느끼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