脂元升이 以哭孔文擧尸하니 魏太祖가 收欲治罪나 以其事直으로 見原이라 元升이 後見太祖하여 陳謝前愆하니 太祖가 呼其字曰
元升 卿故慷慨
注+① 魚豢魏略曰 “脂習, 字元升, 京兆人. 公府高第. 天子西遷, 及詣許昌, 習常隨從. 與少府孔融親善. 太祖爲司空, 威德日盛, 融書疏倨傲, 習常責融, 欲令改節. 融被誅時, 許中百官與融親善者, 莫敢收恤, 習獨撫而哭之曰 ‘文擧, 卿舍我死, 我當復與誰語者.’”라하다
15-4 【보補】 지원승脂元升(지습脂習)이 공문거孔文擧(공융孔融)의 시신에 곡하자 위 태조(조조曹操)가 그를 체포하여 죄를 다스리려 하였으나, 그가 한 일이 올발랐기 때문에 용서받았다. 지원승이 후에 태조를 만나 지난 잘못을 사죄하자, 태조가 그의 자字를 부르며 말하였다.
“원승, 경이 예전에 강개하였지.”
注+① 어환魚豢의 에 말하였다. “지습脂習은 자字가 원승元升이고, 경조京兆 사람이다. 공부公府에서 높은 순위에 천거하였다. 지습이 늘 수행하여 시종하였다. 소부少府 공융孔融과 친하였다. 태조太祖(조조曹操)가 사공司空이 되어 위덕威德이 나날이 강성해지는데 공융의 진언하는 태도가 거만하자, 지습이 항상 그를 나무라며 절조를 바꾸게 하려 하였다. 공융이 처형되었을 때 공융과 친하게 지냈던 허창 안의 백관百官들 중 누구도 감히 그 시신을 수습하고 돌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습만이 그 시신을 어루만지며 곡하면서 말하기를, ‘문거文擧(공융)여, 경이 나를 버리고 죽으면 나는 또 누구와 더불어 말을 한단 말인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