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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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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公幹 以失敬罹罪注+① 典略曰 “劉楨, 字公幹, 東平寧陽人. 建安十六年, 世子爲五官中郞將, 妙選文學, 使楨隨侍太子. 酒酣坐歡, 乃使夫人甄氏出拜. 坐上客多伏, 而楨獨平視. 他日公聞, 乃收楨, 減死, 輸作部.” 文士傳曰 “楨性辯捷, 所問應聲而答. 坐平視甄夫人, 配輸作部, 使磨石. 武帝至尙方觀作者, 見楨匡坐正色磨石. 武帝問曰 ‘石何如.’ 楨因得喩己自理, 跪而對曰 ‘石出荊山懸巖之巓, 外有五色之章, 內含卞氏之珍. 磨之不加瑩, 雕之不增文. 稟氣堅貞, 受之自然. 顧其理枉屈紆繞而不得申.’ 帝顧左右大笑, 卽日赦之.”하니 文帝 問曰
何以不謹於文憲고하니
答曰
臣誠庸短하나 亦由陛下網目不疏注+② 魏志曰 “帝諱丕, 字子桓, 受漢禪.” 按諸書云 “楨被刑魏武之世, 建安二十年病亡.” 後七年, 文帝乃卽位, 而謂楨得罪黃初之時, 謬矣.니이다하다
【頭註】
劉云 “狂宜有此, 曹公不得不問. 磨石甚奇, 匡坐似晩.”
劉云 “說磨石, 甚有情致.”
劉云 “失自責禮, 以敎臣悖.”
王云 “註是.”


3-11 유공간劉公幹(유정劉楨)이 무례無禮하여 처벌을 받았다.注+① ≪전략典略≫에 말하였다. “유정劉楨공간公幹이고 동평東平 영양위寧陽 사람이다. 건안建安 16년(211)에 세자世子(조비曹丕)가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이 되었는데, 〈조조가〉 정선精選하여 유정으로 하여금 태자太子를 수행하게 하였다. 술이 거나해지고 자리가 흥겨워지자 〈세자가〉 부인夫人 견씨甄氏로 하여금 나와서 인사하게 하였다. 자리에 있던 들은 모두 엎드렸는데 유정만이 홀로 엎드리지 않고 그대로 쳐다보았다. 나중에 (조조曹操)이 듣고는 유정을 잡아들였고 사형을 감하여 로 보냈다.”
문사전文士傳≫에 말하였다. “유정은 천성天性이 말을 잘하고 생각이 빨라서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였다. 견부인甄夫人을 엎드리지 않고 그대로 쳐다본 죄를 범하여, 처벌로 작부로 쫓아내 돌을 갈도록 하였다. 무제武帝(조조曹操)가 에 이르러 작업하는 것을 보았는데, 유정이 단정하게 앉아 진지한 낯빛으로 돌을 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제가 ‘돌이 어떠한가?’라고 묻자, 유정은 〈돌에〉 자신을 비유하여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무릎을 꿇고는 ‘이 돌은 형산荊山의 낭떠러지 꼭대기에서 나온 것으로, 바깥에는 다섯 빛깔이 빛나고 안에는 를 품고 있습니다. 갈아도 더 빛나지 않고 조각해도 문채를 더할 수 없습니다. 타고난 기질은 굳고 바른데 이는 자연自然에서 받았습니다. 다만 그 결이 구부러지고 휘어져서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제가 좌우를 돌아보며 크게 웃고는 그날로 사면해주었다.”
문제文帝(조비曹丕)가 물었다.
“경은 어찌하여 예법을 삼가지 않았는가?”
유정이 답하였다.
“신이 참으로 어리석고 부족하지만 또한 폐하陛下의 법망이 성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注+②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문제기文帝紀〉에 말하였다. “문제文帝이고 자환子桓이다. 나라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선양禪讓받았다.”
살펴보건대 여러 책에서 혹은 “유정劉楨 무제武帝 시절에 형을 받고 에 병으로 사망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사망하고〉 뒤에 문제文帝가 즉위하였는데 유정이 은 잘못이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유정劉楨의〉 광기에 당연히 이런 행동이 있었을 것이고, 〈유정의 모습을 보았으니〉 조공曹公이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을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기묘하지만, 〈유정이〉 단정하게 앉은 것이 때늦은 듯하다.
유진옹劉辰翁:돌을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상당히 정취情趣가 있다.
유신옹劉辰翁:〈술자리에 견씨甄氏를 나오게 하여〉 스스로 예의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여 신하가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도록 가르쳤다.
왕세무王世懋:〈유효표劉孝標의〉 주석이 옳다.


역주
역주1 文學 : 관직 이름으로 漢代에 州郡과 王國에 설치하였다. 文學掾 또는 文學史라 칭하기도 하는데 후대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리인 教官에 해당한다.
역주2 作部 : 兵器를 만들던 곳이다.
역주3 尙方 : 고대 帝王이 쓰던 器物을 만들던 관서이다.
역주4 卞氏의 보배 : 卞氏는 卞和로 周나라 시대에 楚나라 왕에게 보배를 헌상한 사람이다. ‘和氏之璧’과 같은 말이다.
역주5 建安 20년(215) : ≪三國志≫ 〈王粲傳〉에는 건안 22년(217)으로 되어 있다.
역주6 7년 : 曹丕가 漢나라의 선위를 받아 帝位에 오른 것은 220년이므로 ‘7년’이란 숫자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역주7 黃初……것 : ≪世說新語≫ 본문에 劉楨이 曹丕를 ‘陛下’라고 지칭하였으니, 이는 곧 조비가 帝位에 오른 이후를 가리키는 것이다. 조비의 연호가 黃初이다.
역주8 : ≪世說箋本≫에는 ‘咸’으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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