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정선精選하여 유정으로 하여금 태자太子를 수행하게 하였다. 술이 거나해지고 자리가 흥겨워지자 〈세자가〉 부인夫人견씨甄氏로 하여금 나와서 인사하게 하였다. 자리에 있던 객客들은 모두 엎드렸는데 유정만이 홀로 엎드리지 않고 그대로 쳐다보았다. 나중에 공公(조조曹操)이 듣고는 유정을 잡아들였고 사형을 감하여
에 이르러 작업하는 것을 보았는데, 유정이 단정하게 앉아 진지한 낯빛으로 돌을 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제가 ‘돌이 어떠한가?’라고 묻자, 유정은 〈돌에〉 자신을 비유하여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무릎을 꿇고는 ‘이 돌은 형산荊山의 낭떠러지 꼭대기에서 나온 것으로, 바깥에는 다섯 빛깔이 빛나고 안에는
를 품고 있습니다. 갈아도 더 빛나지 않고 조각해도 문채를 더할 수 없습니다. 타고난 기질은 굳고 바른데 이는 자연自然에서 받았습니다. 다만 그 결이 구부러지고 휘어져서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제가 좌우를 돌아보며 크게 웃고는 그날로 사면해주었다.”위魏문제文帝(조비曹丕)가 물었다.
“경은 어찌하여 예법을 삼가지 않았는가?”
유정이 답하였다.
“신이 참으로 어리석고 부족하지만 또한 폐하陛下의 법망이 성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注+②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문제기文帝紀〉에 말하였다. “문제文帝의 휘諱는 비丕이고 자字는 자환子桓이다. 한漢나라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선양禪讓받았다.” 살펴보건대 여러 책에서 혹은 “유정劉楨이 위魏무제武帝 시절에 형을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