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時에 有沙門訟田이러니 武帝大署曰貞이라 有司未辯하여 徧問莫知어늘 劉顯曰
帝忌出之
注+① 梁書曰 “劉顯, 字嗣芳, 沛國相人, 父鬷, 晉安内史. 顯幼聰敏, 當世號曰神童. 好學博渉多通, 仕至平西諮議參軍.”하다
21-8 【
보補】
양梁나라 때
사문沙門의 토지 소송이 있었는데,
가 〈판결문에〉 ‘
정貞’이라고 크게 썼다. 담당관이 그 뜻을 파악할 수 없어 두루 물어도 아무도 알지 못하였는데,
유현劉顯이 말하였다.
무제가 그를 꺼려 〈지방관으로〉 내보냈다.
注+① ≪양서梁書≫ 〈유현전劉顯傳〉에 말하였다. “유현劉顯은 자字가 사방嗣芳이고 패국沛國 상相 사람이었으며 부친 유종劉鬷은 진안내사晉安内史를 지냈다. 유현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여 당시에 ‘신동神童’이라고 불렸다. 배우기를 좋아하여 두루 섭렵하고 여러 가지에 통달하였으며, 벼슬은 평서자의참군平西諮議參軍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