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王養(왕태王泰)이注+① 〈양養은〉 왕태王泰의 어릴 적 이름이다. 서너 살 때 조모가 여러 손자와 조카를 모아 놓고 상에 대추와 밤을 벌여놓자 아이들이 다투어 그것을 집었는데, 왕태만은 꼼짝하지 않았다. 조모가 그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집지 않아도 〈내려주시는 것을〉 자연히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注+② ≪양서梁書≫ 〈왕태전王泰傳〉에 말하였다. “왕태王泰는 자字가 중통仲通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직접 필사한 책이 2천 여 권이었다. 성장하여서는 온화하고 점잖아서 집안사람들이 그가 기뻐하거나 성 내는 기색을 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