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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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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養注+① 泰小字.年數歲時 祖母集諸孫姪하고 散棗栗於牀하니 群兒競取之로대 泰獨不動이라 祖母問其故하니
不取라도 自當得賜注+② 梁書曰 “王泰, 字仲通. 幼敏悟好學, 手所抄寫二千許卷. 及長, 通溫和雅, 家人不見喜慍之色. 與王筠齊名, 沈約常曰‘王有養炬, 謝有覽舉.’ 炬即筠小字也.”라하다


22-25 왕양王養(왕태王泰)이注+① 〈은〉 왕태王泰의 어릴 적 이름이다. 서너 살 때 조모가 여러 손자와 조카를 모아 놓고 상에 대추와 밤을 벌여놓자 아이들이 다투어 그것을 집었는데, 왕태만은 꼼짝하지 않았다. 조모가 그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집지 않아도 〈내려주시는 것을〉 자연히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注+② ≪양서梁書≫ 〈왕태전王泰傳〉에 말하였다. “왕태王泰중통仲通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직접 필사한 책이 2천 여 권이었다. 성장하여서는 온화하고 점잖아서 집안사람들이 그가 기뻐하거나 성 내는 기색을 보지 못하였다. 과 명성이 나란하였는데, 심약沈約은 늘 말하기를 ‘왕씨王氏 집안에는 왕양王養왕거王炬가 있고 사씨謝氏 집안에는 사람謝覽사거謝擧가 있다.’라 하였다. 왕거王炬는 바로 왕균王筠의 어릴 적 이름이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세설신어≫에 실려 있지 않고 ≪何氏語林≫에 실려 있는 것에 의거하여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王筠 : 482~550. 梁(南朝)나라의 관원이자 시인으로, 字는 元禮 또는 德柔이고, 侍中 王僧虔의 손자이다. 秘书监․太府卿․度支尚书․太子詹事 등을 지냈으며 ≪洗马≫․≪中书≫ 등 문집 100권이 있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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