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孝穆이 使魏하니 魏人이 授館宴賓이라 是日甚熱한대 主客魏收가 嘲孝穆曰
今日之熱
은 當由徐常侍來
注+① 南史曰 “徐陵, 字孝穆, 東海郯人, 徐摛子也. 母臧氏夢五色雲化爲鳳, 集左肩上, 已而誕陵. 十三通老莊義, 及長, 博涉史籍, 美文辭. 官至中書監․領太子詹事.”리라하니
前
에 王肅
이 至此
하여 為魏始制禮儀
하고 今
에 我來聘
하여 使卿復知寒暑
注+② 北史曰 “王肅, 字恭懿, 瑯琊臨沂人. 父奐, 齊雍州刺史. 肅少聰辯, 涉獵經史, 頗有大志. 位秘書丞. 父奐爲齊武帝所殺, 肅自建業來奔, 孝文虛待之. 引見問故, 肅辭義敏切, 辯而有, 帝甚哀惻之. 官散騎常侍․揚州刺史.”라하다
5-9【
보補】
서효목徐孝穆(
서릉徐陵)이
위魏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위나라 사람들이 숙소를 제공하고 잔치를 열었다. 이날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
인
위수魏收가 서효목을 조롱하였다.
注+① ≪남사南史≫ 〈서리전徐摛傳〉에 말하였다. “서릉徐陵은 자字가 효목孝穆이고 동해東海 담郯 사람으로 서리徐摛의 아들이다. 모친 장씨臧氏가 오색구름이 봉황이 되더니 왼쪽 어깨 위로 내려앉는 꿈을 꾸었고 얼마 있지 않아 서릉을 낳았다. 13세에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뜻에 통달하였고, 장성하고 나서는 사적史籍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문장이 아름다웠다. 벼슬이 중서감中書監과 영태자첨사領太子詹事에 이르렀다.”
“전에
왕숙王肅이 이곳에 와서 위나라를 위해 비로소
예의禮儀를 제정하였고,
注+② ≪북사北史≫ 〈왕소전王蕭傳〉에 말하였다. “왕숙王肅은 자字가 공의恭懿이고 낭야瑯琊 임기臨沂 사람이다. 부친 왕환王奐은 제齊나라의 옹주자사雍州刺史였다. 왕숙은 어려서부터 총명하며 언변이 좋았고,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였고, 자못 큰 뜻을 품었다. 비서승秘書丞을 지냈다. 부친 왕환이 제齊 무제武帝에게 살해당하자 왕숙은 건업建業에서 〈북위北魏로〉 도망쳐 왔다.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원굉元宏)는 겸허하게 그를 대우하였고 인견引見하여 까닭을 물어보았는데, 왕숙의 말이 민첩하고 뜻은 절실하며 달변에다 예의가 있었기에 효문제가 매우 가엽게 여겼다. 산기상시散騎常侍와 양주자사揚州刺史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