肅肅如入廊廟中
하니 不脩敬而人自敬
注+① 禮記曰 “周豐謂魯哀公曰 ‘宗廟社稷之中, 未施敬而民自敬.’”이라하다
如入宗廟
하니 琅琅但見禮樂器
하고 見鍾士季
하면 如觀武庫
하니 但覩矛㦸
하고 見傅蘭碩
하면 靡所不有
하고 見山巨源
하면 如登山臨下
하니 幽然深遠
이라하다
注
王云 “據晉史, 作汪翔, 蓋汪字訛而爲江, 翔音訛而爲廧也. 然汪廧亦甚費解.”
15-10 배령공裴令公(배해裵楷)이 하후태초夏侯太初(하후현夏侯玄)를 품평하였다.
“엄숙하기가 마치
묘당廟堂에 들어 간 것 같으니 일부러 공경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사람이 저절로 공경하게 된다.”
注+① ≪예기禮記≫ 〈단궁檀弓 하下〉에 말하였다. “주풍周豐이 노애공魯哀公에게 말하기를, ‘종묘와 사직단에서는 공경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백성이 자연히 공경합니다.’ 하였다.”
“〈하후태초는〉 마치 종묘에 들어간 것 같으니 영롱하게 예기禮器와 악기樂器만 보이고, 종사계鍾士季(종회鍾會)를 보면 마치 무고武庫를 사열하는 것 같으니 온갖 창들만 보이며, 부란석傅蘭碩(부하傅嘏)을 보면 광대하여 수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산거원山巨源(산도山濤)을 보면 마치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이 아득하게 깊고 멀다.”
注
◦ 왕세무王世懋:〈강장江廧은〉 진晉나라 사서史書(≪진서晉書≫ 〈배해전裴楷傳〉)에 의하면, ‘왕상汪翔’으로 되어 있다. 이는 왕자汪字가 잘못 전해져서 강江이 되고, ‘상翔’ 자字의 발음이 잘못 전해져서 장廧이 된 것이다. 그러나 왕장汪廧 역시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