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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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竺法深 在簡文坐하니 劉尹
道人 何以游朱門고하니
答曰
自見其朱門이나 貧道 如遊蓬户注+① 法深, 不知其俗姓, 蓋衣冠之胤也. 道徽高扇, 譽播山東, 爲中州劉公弟子. 値永嘉亂, 投迹楊土, 居止京邑. 內持法綱, 外允具瞻, 弘道之法師也. 以業淸淨, 而不耐風塵, 考室剡縣東二百里𡵙山中, 同遊十餘人, 高棲浩然. 支道林宗其風範, 與高麗道人書, 稱其德行. 年七十有九, 終於山中也. 高逸沙門傳曰 “法師居會稽, 皇帝重其風德, 遣使迎焉, 法師暫出應命. 司徒會稽王, 天性虛澹, 與法師結殷勤之歡. 師雖升履丹墀, 出入朱邸, 泯然曠達, 不異蓬宇也.”라하다
或云卞令注+② 卞壺, 別見.이라하다


4-30 축법심竺法深(축잠竺潛)이 간문제簡文帝(사마욱司馬昱)와 자리를 함께하였는데 유윤劉尹(유담劉惔)이 물었다.
변호卞壺변호卞壺
도인道人은 어찌하여 〈권세가의〉 붉은 칠을 한 대문에서 노니십니까?”
〈축법심이〉 대답하였다.
“그대에게는 자연히 붉은 칠을 한 대문이 보이겠지만 빈도貧道에게는 쑥대로 엮은 문이 〈있는 가난한 이의 집에서〉 노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注+법심法深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사대부의 후손일 것이다. 의 훌륭함이 높이 드날렸으며 명성이 산동山東에 퍼져 중주中州 유공劉公(유원진劉元眞)의 제자가 되었다. 를 만나 양주楊州로 피신하였다가 〈후에〉 도성(건업建業)에 거주하였다. 안으로는 계율을 지키고 밖으로는 사람들이 신뢰를 받아 불법을 널리 전한 법사法師였다. 수행修行이 더욱 청정해지자 〈세속의〉 풍진風塵을 견디지 못해 섬현剡縣 동쪽 2백 리에 있는 앙산𡵙山 속에 자리를 잡고 같이 노닐던 10여 명의 사람들과 은거하며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지도림支道林(지둔支遁)이 그의 풍도風度를 높이 사서 에서 그의 덕행을 칭송하였다. 나이 79세에 산속에서 죽었다.
에 말하였다. “법사가 회계會稽에 기거할 때에 황제皇帝가 그 풍모와 덕행을 중히 여겨 사람을 보내 맞이하였는데, 법사는 잠시 나와 명에 응하였다. 사도司徒회계왕會稽王( 간문제簡文帝 사마욱司馬昱)은 천성天性이 겸허하고 담백하였기에 법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법사는 비록 궁궐에 오르고 권세가의 저택에 출입하였으나 〈마음이〉 막힘없이 트이고 넓어 가난한 이의 집과 다름없이 여겼다.”
혹은 〈이렇게 물은 이가〉 변령卞令(변호卞壺)이라고 한다.注+변호卞壺는 따로 보인다.


역주
역주1 俗世의 姓 : ≪高僧傳≫ 〈竺潛傳〉에는 성이 ‘王’으로 되어 있다.
역주2 永嘉의 난리 : 西晉 永嘉 5년(311)에 이민족이 서진의 수도인 洛陽을 함락하고 懷帝 등을 포로로 잡은 사건이다.
역주3 高麗의……편지 : 이 편지의 내용은 ≪高僧傳≫ 〈竺潛傳〉에 실려 있다.
역주4 高逸沙門傳 : ≪宋高僧傳≫ 등에 따르면 晉 孝武帝 때 法濟가 지었다고 한다.
역주5 : 宋本 ≪世說新語≫ 〈德行〉 ‘桓常侍’ 항목의 劉孝標 注에는 ‘慈’가 ‘滋’로 되어 있으며, ‘慈’는 ‘滋’와 통용할 수 있다. 그리고 ≪高僧傳≫ 〈竺潛傳〉에는 ‘以業慈淸淨 而不耐風塵’이 ‘以道業靖濟 不耐塵俗(道業으로 靖濟하여 속세의 일을 견디지 못했다.)’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여기서 ‘慈’를 ‘滋(보태다, 더욱)’의 의미로 번역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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