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夷甫父乂가 爲平北將軍일새 有公事하여 使行人論이로대 不得이라 時에 夷甫가 在京師라가 命駕하여 見僕射羊祜․尙書山濤라 夷甫가 時總角이로대 姿才秀異하고 叙致旣快하며 事加有理하니 濤甚奇之라 旣退에 看之不輟하고 乃歎曰
亂天下者
는 必此子也
라하다注+① 晉陽秋曰 “夷甫父乂有, 將免官. 夷甫年十七, 見所繼從舅羊祜, 申陳事狀, 辭甚俊偉. 祜不然之, 夷甫拂衣而起. 祜顧謂賓客曰 ‘此人必將以盛名, 處當世大位. 然敗俗傷化者, 必此人也.” 漢晉春秋曰 “初, 羊祜以軍法, 欲斬王戎, 夷甫又忿祜言其必敗, 不相貴重. 天下爲之語曰 ‘二王當朝, 世人莫敢稱羊公之有德.’”
注
李云 “羊公, 退一步是步步踏實地人也. 夷甫, 狂者, 自不相入, 安得便再輕重?”
注
又云 “別史云 ‘二王當國, 羊公無德, 更有佳.’”
14-16
의 부친
왕예王乂가
평북장군平北將軍으로 있을 때 공적인 일이 있어
행인行人(
사자使者)을 시켜 진술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때 왕이보가
경사京師에 있었는데 수레를 준비하게 하여
복야僕射 양호羊祜와
상서尙書 산도山濤를 만났다. 왕이보가 이때
머리를 한 소년이었는데 자태가 빼어나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서술이 명쾌한데다 일처리까지 논리가 있자, 산도가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그가 물러가자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감탄하여 말하였다.
“자식을 낳으면 왕이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천하를 어지럽힐 자가 필시 이 아이일 것입니다.”
注+① 에 말하였다. “왕이보王夷甫(왕연王衍 256~311)의 부친 왕예王乂는 〈비난하는〉 문서가 있어서 장차 관직에서 파면될 상황이었다. 왕이보가 당시 17살이었는데, 계모繼母의 종형제從兄弟인 양호羊祜(211~278)를 만나 일의 실상을 자세히 진술할 때 말이 매우 준엄하고 훌륭하였다. 양호가 자신의 말을 인정하지 않자, 왕이보는 옷자락을 떨치며 일어나 버렸다. 양호가 돌아보며 빈객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필시 성대한 명성으로 당대의 높은 지위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풍속을 무너뜨리고 교화를 해칠 자는 필시 이 사람이다.’” 하였다.
에 말하였다. “처음에 양호羊祜는 군법軍法으로 〈왕연王衍의 종형從兄인〉 왕융王戎을 처형하려 하였고, 왕이보는 또 양호가 자신을 두고 반드시 패망할 것이라 말한 것을 분하게 여겨 서로 존중하지 않았다. 천하 사람들이 그 때문에 말하기를, ‘두 왕씨王氏(왕융王戎과 왕연王衍)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양공羊公에게 덕이 있다고 칭찬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注
◦ 유진옹劉辰翁:부친을 대신하여 진술한 것이다.
注
◦ 이지李贄:양공은 한 걸음 물러나서 걸음걸음이 차분한 사람이고, 이보夷甫(왕연王衍)는 광자狂者라서 자연히 서로 맞지 않으니, 어찌 더 이상 평가할 수 있겠는가.
注
◦ 유진옹:양공(양호羊祜)이 왕연王衍을 알아본 것이 거원巨源(산도山濤)보다 뛰어나다.
注
◦ 유진옹:별사別史에 이르기를 ‘두 왕씨(왕융王戎과 왕연王衍)가 정권을 잡았을 때, 양공은 아무런 덕德이 없었으니 더욱 뛰어나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