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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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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方慶在政府注+① 劉昫唐書曰 “王方慶, 雍州咸陽人, 周石泉公褒之曾孫. 官至太子左庶子. 博學好著述, 尤精三禮.” 其子爲眉州司士參軍注+② 唐書曰 “方慶長子光輔, 開元中, 官至潞州刺史.”이라 武后嘗問호되
卿在相位어늘 何子之遠고하니
方慶答曰
廬陵是陛下愛子로되 今尙在遠하니 臣之子 庸敢相近注+③ 唐紀曰 “則天嗣聖元年二月, 廢皇帝爲廬陵王, 幽於別所, 仍改賜名哲. 夏四月, 遷廬陵王於均州, 明年三月, 遷廬陵王哲於房州.”이리오하다


20-19 【왕방경王方慶에 있을 때注+유후劉昫의 ≪당서唐書≫에 말했다. “왕방경王方慶옹주雍州 함양咸陽 사람으로 북주北周 석천공石泉公 왕포王褒의 증손자이다. 관직은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에 이르렀다. 박학다식하였으며 저술著述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특히나 에 정통하였다.” 그의 아들이 미주眉州사사참군司士參軍이 되었다.注+② ≪당서唐書≫에 말했다. “왕방경의 맏아들 왕광보王光輔개원開元 연간(713~741)에 관직이 노주자사潞州刺史에 이르렀다.”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한번은 물었다.
“경은 재상의 지위에 있는데 어찌하여 아들을 멀리 보냈는가?”
왕방경이 대답하였다.
여릉왕廬陵王(이현李顯)은 폐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인데도 지금 오히려 먼 곳에 있는데 신의 아들을 어찌 감히 가까이 둘 수 있겠습니까.”注+③ ≪당기唐紀≫에 말했다. “측천무후則天武后사성嗣聖 원년(684) 2월에 황제皇帝를 폐위하여 여릉왕廬陵王으로 삼고 다른 곳에 유폐시키고 이어 이름을 ‘’로 바꾸어 내렸다. 그해 여름인 4월에는 여릉왕을 균주均州로 옮겼고, 다음해 3월에는 여릉왕 이철李哲방주房州로 옮겼다.”


역주
역주1 政府 : 唐宋 시대에는 宰相이 정무를 보는 곳을 ‘정부’라고 한다.(≪世說音釋≫)
역주2 三禮 : 유가 경전인 ≪周禮≫․≪儀禮≫․≪禮記≫를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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