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方慶在政府
注+① 劉昫唐書曰 “王方慶, 雍州咸陽人, 周石泉公褒之曾孫. 官至太子左庶子. 博學好著述, 尤精三禮.”에 其子爲眉州司士參軍
注+② 唐書曰 “方慶長子光輔, 開元中, 官至潞州刺史.”이라 武后嘗問
호되
廬陵是陛下愛子
로되 今尙在遠
하니 臣之子
를 庸敢相近
注+③ 唐紀曰 “則天嗣聖元年二月, 廢皇帝爲廬陵王, 幽於別所, 仍改賜名哲. 夏四月, 遷廬陵王於均州, 明年三月, 遷廬陵王哲於房州.”이리오하다
20-19 【
보補】
왕방경王方慶이
에 있을 때
注+① 유후劉昫의 ≪당서唐書≫에 말했다. “왕방경王方慶은 옹주雍州 함양咸陽 사람으로 북주北周 석천공石泉公 왕포王褒의 증손자이다. 관직은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에 이르렀다. 박학다식하였으며 저술著述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특히나 에 정통하였다.” 그의 아들이
미주眉州의
사사참군司士參軍이 되었다.
注+② ≪당서唐書≫에 말했다. “왕방경의 맏아들 왕광보王光輔는 개원開元 연간(713~741)에 관직이 노주자사潞州刺史에 이르렀다.”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한번은 물었다.
“경은 재상의 지위에 있는데 어찌하여 아들을 멀리 보냈는가?”
“
여릉왕廬陵王(
이현李顯)은 폐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인데도 지금 오히려 먼 곳에 있는데 신의 아들을 어찌 감히 가까이 둘 수 있겠습니까.”
注+③ ≪당기唐紀≫에 말했다.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사성嗣聖 원년(684) 2월에 황제皇帝를 폐위하여 여릉왕廬陵王으로 삼고 다른 곳에 유폐시키고 이어 이름을 ‘철哲’로 바꾸어 내렸다. 그해 여름인 4월에는 여릉왕을 균주均州로 옮겼고, 다음해 3월에는 여릉왕 이철李哲을 방주房州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