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綽
이 賦遂初
하고 築室畎川
하여는 自言見止足之分
注+① 中興書曰 “綽, 字興公, 太原中都人. 少以文稱, 歷太學博士․大著作․散騎常侍.” 遂初賦敍曰 “余少慕老莊之道, 仰其風流久矣, 卻感於陵賢妻之言, 悵然悟之. 乃經始東山, 建五畝之宅, 帶長阜, 倚茂林. 孰與坐華幕擊鐘鼓者, 同年而語其樂哉.”하다 齋前
에 種一株松
하고 恒自手壅治之
러라 髙世遠
注+② 孫統爲柔集敍曰 “柔, 字世遠, 樂安人. 才理淸鮮, 安行仁義. 婚泰山胡毋氏女, 年二十, 旣有倍年之覺, 而姿色淸惠, 近是上流婦人. 柔家道隆崇, 旣罷司空參軍․安固令, 營宅於伏川, 馳動之情旣薄, 又愛翫賢妻, 便有終焉之志. 尙書令何充取爲冠軍參軍, 僶俛應命, 眷戀綢繆, 不能相舍. 相贈詩書, 淸婉辛切.”이 時亦隣居
한대 語孫曰
4-59
손작孫綽이 〈
수초부遂初賦〉를 짓고
견천畎川에 집을 짓고는
를 알았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注+①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손작孫綽은 자字가 흥공興公이고 태원太原 중도中都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태학박사太學博士․대저작大著作․산기상시散騎常侍를 거쳤다.”
〈수초부서遂初賦敍〉에 말하였다. “나는 어려서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도道를 흠모하여 그 유풍遺風을 우러러본 지 오래되었는데, 도리어 의 말에 감동하여 창연悵然히 깨달았다. 이에 동산東山을 개간하여 5묘畝가 되는 집을 지었는데, 긴 언덕을 띠처럼 두르고 무성한 숲에 기대어 있다. 그 누가 화려한 장막에 앉아 종고鐘鼓를 치는 자와 더불어 같은 수준으로 그 즐거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서재 앞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늘 손수 흙을 북돋우며 길렀다.
고세원髙世遠(
고유高柔)도
注+② 손통孫統이 지은 〈고유집서高柔集敍〉에 말하였다. “고유高柔는 자字가 세원世遠이고 낙안樂安 사람이다. 재기才氣가 탁월하였고 인의仁義를 편안하게 행하였다. 태산泰山의 호무씨胡毋氏의 딸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나이 스물에 이미 나이가 배나 되는 사람의 지각을 가졌으며 용모와 자태가 아름답고 현숙하여 상류층 부인에 가까웠다. 고유는 집안 형편이 좋아 사공참군司空參軍과 안고령安固令을 그만두고 나서는 에 집을 마련했는데, 벼슬살이에 대한 마음은 이미 옅어진데다가 또 현숙한 아내를 사랑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치려는 뜻을 가졌다. 상서령尙書令 하충何充이 데려다가 관군참군冠軍參軍으로 삼자, 애써 명에 응했으나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서로 떨어지지 못하였다. 서로 주고받은 시詩와 서신은 맑고 아름다웠으며 애절하였다.” 당시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손작에게 말하였다.
손작孫綽
“작은 소나무는 자태가 아름다워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동량棟梁으로는 쓰일 수가 없습니다.”
“단풍나무와 버드나무는 비록 아름드리 굵기가 되더라도 어디에 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