予刻世說豫章하여 舊所病勾棘難通者도 亦旣有倫矣로대 惜也라 子固讎對之功闕焉이여 探字疎句가 往往而訛하여 幾於誤人하고 標評小語도 亦續有得이나 時復循覽에 而恨其未覈也라
家兄元美가 嘗並何氏語林에 刪其無當하고 合爲一編한대 久乃散落이라
友人張仲立
이 得而嗜之
하여 次第修註
하고 而更爲訂何氏之乖迕
하고 與益其註之未備
하니 經年
하여 殺靑滿室
이라 會予將之閩中
할새 手以相示
하고 且請序作者之意
하니 予豫章後重校善本
을 不吝授之
라
盖臨川과 孝標는 功緒略當하며 元朗의 羽翼은 意亦勤矣하니 昔猶璋判이나 今始珪合이라 予所研覈不寘者는 將無鄭玄之遇服氏哉아
若孝標一註는 疑有羼入中間하여 稍爲指擿이나 終未得起斯人于九原하여 令千載洗然也리라 書以復仲立하고 仍具此意하여 相與商求之라
내가
예장豫章에서 ≪세설신어≫를 간행하여 예전에 난삽하여 의미가 통하지 않아 병통으로 여겼던 구절도 이윽고 조리가 있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처럼 공들여 교감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찾아낸 글자나 소통시킨 구절이 왕왕 잘못되어 자칫 사람들을 미혹시킬 수 있었고, 품평하는 짤막한 구절도 계속 이어서 얻었으나 때때로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니 제대로 고찰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가형家兄 원미元美(왕세정王世貞)가 전에 ≪하씨어림何氏語林≫을 병합할 때 수록하기에 마땅하지 않은 일화를 제거하고 〈≪세설신어≫와〉 합하여 한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 책은〉 오래되어 결국 산실散失되었다.
친구인
이 이 책을 얻고는 좋아하여 차례로
주註를 달았고, 다시
하씨何氏(
하량준何良俊)가 잘못한 것을 정정하는 한편 미비한 주석을 보충하느라 수 년 동안 작업하여
마침 내가
민중閩中에 가게 되자, 그가 손수 〈그 원고를〉 보여주고 또 작자의 뜻을 서문으로 써줄 것을 청하므로 예장에서 간행한 뒤 다시 교감해둔
선본善本을 아낌없이 그에게 주었다.
대개
임천臨川(
유의경劉義慶)과
유효표劉孝標(
유준劉峻)는 업적이 대략 같으며
원랑元郞(
하량준何良俊)이 〈유의경을〉 보완해준 것은 그 뜻이 또한 근실하였으니, 예전에는 오히려 반쪽으로 갈라졌던
옥玉이 오늘에야 비로소 온전한 옥으로 합쳐진 것이다. 내가 끝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은 장차
해결되지 않겠는가.
유효표의 주는 중간에 섞여들어 간 것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어 약간 지적을 받으나, 끝내 이 사람을 저승에서 살아오게 하여 천 년 뒤인 오늘날에 밝히게 할 수는 없으리라. 서문을 지어 장중립에게 돌려주고 이어 이러한 뜻을 갖추어 써서 서로 함께 상의하고자 한다.
을유년乙酉年(1585) 1월에 왕세무王世懋가 다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