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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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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軍 次于興平하니 假費文偉節하여 督師往禦注+① 禕別傳曰 “戰國多事, 公務煩猥. 禕識悟過人, 每省讀書記, 擧目暫視, 已究其意旨, 其速數倍於人, 終亦不忘. 常以朝晡聽事, 其間接納賓客, 飮食嬉戱, 加之博奕, 每盡人之歡, 事亦不廢. 董允爲尙書令, 欲斅禕之所行, 旬日之中, 事多愆滯. 歎曰 ‘人才力相懸若此, 吾聽事終日, 猶不暇爾.’”한대 光祿大夫來敏 至文偉許別하고 就求圍棋 于時 羽檄交馳하고 嚴駕已訖이어늘 文偉 留意對戲하여 色無厭倦하니 敏曰
聊觀試卿耳 信自可人이니 必能辦賊者注+② 蜀志曰 “來敏, 字敬達, 義陽新野人. 父艶, 漢司空. 敏涉獵書籍, 善左氏春秋, 尤精於倉․雅訓詁. 先主署典學校尉, 與孟光皆以樞機不愼, 數見貶削. 然敏, 東宮舊恩, 特加優待. 後爲執愼將軍, 欲令以官自警.”니이다하다


12-5 【(삼국三國)나라 군대가 흥평興平에 주둔하자, (삼국三國)나라는 비문위費文偉(비의費禕)에게 부절符節을 주어 군대를 통솔하여 가서 방어하게 하였다.注+① 〈비의별전費禕別傳〉에 말하였다. “전쟁 중인 나라에는 사안이 많아 공무公務가 번잡하였다. 비의는 식견과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 매번 상주문을 살펴 읽을 때마다 눈을 들어 잠깐 보아도 이미 그 뜻을 꿰뚫었는데, 그 속도가 남보다 몇 배 빨랐고 끝까지 역시 잊지 않았다. 〈그는〉 항상 조시朝時(신시辰時, 7~9시)와 포시晡時(신시申時, 15~17시)에 공무를 처리하였다. 그 사이에 빈객을 맞아 들여 음식을 먹고 즐겁게 놀며 게다가 바둑까지 두었는데, 매번 사람의 즐거움을 다 누리면서도 공무 역시 잘 처리하였다. 동윤董允상서령尙書令이 되었을 때 비의가 하는 바를 본받으려고 하였으나, 열흘 사이에 〈처리해야 할〉 공무가 많이 쌓이자, 탄식하면서 ‘사람의 재주와 역량이 이처럼 현격히 차이가 나는구나. 나는 온종일 공무를 처리하는데도 오히려 틈을 내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광록대부光祿大夫 내민來敏이 비문위의 집에 가서 작별하면서 바둑을 두자고 요청하였다. 이 당시에 이 끊임없이 도착하고 수레 정비가 이미 끝난 상태였는데도 비문위가 대국對局에 몰두하여 싫증내는 기색이 없자, 내민이 말하였다.
“잠시 그대를 관찰하면서 시험해본 것이오. 진실로 본래 가인可人(재덕才德을 지닌 사람)이니 틀림없이 적군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오.”注+②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내민전來敏傳〉에 말하였다. “내민은 경달敬達로, 의양義陽 신야新野 사람이다. 부친 내염來艶나라의 사공司空을 역임하였다. 내민은 서적을 두루 섭렵했는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뛰어나고 특히 의 훈고학에 정통하였다. 선주先主(유비劉備)가 전학교위典學校尉에 임명했는데, 과 함께 모두 추기樞機(국가 기밀)를 신중히 처리하지 않아 자주 폄삭貶削되었다. 그러나 내민은 로 특별히 우대받았다. 이후에 집신장군執愼將軍으로 삼았으니, 관직명으로 스스로를 경계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羽檄 : 군사상 긴급하게 전달하는 檄文으로, 격문에 새의 깃털을 꽂아서 긴급한 뜻임을 보여 신속하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역주2 倉頡篇 : 창힐은 黃帝 때의 史官으로, 漢字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상의 인물이며, ≪창힐편≫은 字書의 이름으로 秦나라 李斯가 지었다고 한다. 漢나라 초기에 이사의 ≪창힐편≫, 趙高의 ≪爰曆篇≫, 胡毋敬의 ≪博學篇≫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三倉이라 칭하고, 또한 이를 통칭하여 ‘창힐편’이라고도 하였는데 총 3,300자였다고 한다. 이후 魏晉시대에 이르러 또 이사의 ≪창힐편≫을 상권, 揚雄의 ≪訓纂篇≫을 중권, 賈魴의 ≪滂喜篇≫을 하권으로 하여 책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역주3 爾雅 : 13經의 하나로, 중국 고대의 경전에 나오는 천문과 지리, 음악과 기물, 초목과 금수 등에 관한 글자를 해석한 책이다.
역주4 孟光 : 河南 洛陽 사람으로, 字는 孝裕이다. 漢 靈帝 말년에 講部吏가 되고, 獻帝가 長安으로 천도하자 촉으로 도망갔다. 劉備가 益州를 평정한 뒤에 議郞에 제수되어 許慈 등과 함께 제도를 주관하고, 劉禪이 등극한 뒤에 符節令․屯騎校尉․長樂少府․大司農 등을 역임하였다.
역주5 東宮(劉禪)의 옛 은혜 : 昭烈帝(劉備)가 章武 元年(221)에 蜀漢을 건립하고 맏아들 劉禪을 태자로 삼았을 때, 來敏이 太子家令이 된 일을 이른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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