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安期가 去官하고 東渡江한대 道路梗澁하여 人懐危懼어늘 王은 毎遇艱險에 處之夷然하니 雖家人이라도 不見其憂喜之色이라 既至下邳에 登山北望하고 歎曰
當爾時
하면 覺形神俱往
注+① 名士傳曰 “王承, 字安期, 太原晉陽人. 父湛, 汝南太守. 承冲淡寡欲, 無所循尙. 累遷東海內史, 爲政淸靜, 吏民懷之. 避亂渡江, 元皇爲鎭東, 引爲從事中郞.”이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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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기王安期(
왕승王承)가 관직을 그만두고 동쪽으로
장강長江을 건넜는데, 길이 험하여 사람들이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 왕안기는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태연하게 대처하여 비록 집안사람들이라도 그가 근심하거나 기뻐하는 낯빛을 띠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비下邳에 도착하고 나서 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사람들이 근심스럽다 말했지만 나는 지금에야 근심스러워지려 합니다.”
“이런 때를 당하면 몸도 정신도 모두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注+① ≪명사전名士傳≫에 말하였다. “왕승王承은 자字가 안기安期이고 태원太原 진양晉陽 사람이다. 부친 왕담王湛은 여남태수汝南太守였다. 왕승은 담박하고 욕심이 없어 즐기거나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동해내사東海內史가 되었는데 정사를 행함이 맑고 간소하여 관리와 백성들이 존경하였다. 난리를 피해 장강長江을 건넜는데, 진晉 원제元帝(사마예司馬睿)가 진동장군鎭東將軍이 되어 불러서 종사중랑從事中郞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