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魏公이 駐兵延安한대 忽夜有人携匕首하여 至臥內라 魏公起하여 問
某來殺諫議
注+① 韓忠獻家傳曰 “公, 諱琦, 字穉圭, 相州人. 天聖五年, 進士第二, 方唱名, 太史奏日下雲見. 後相英․神兩朝, 贈魏國忠獻王.”니이다하다
遂取帶去
하고 魏公
도 亦不治此事
注+③ 宋史曰 “趙元昊反, 琦適自蜀歸, 論西師形勢甚悉, 卽命爲陝西安撫使. 琦與仲淹在兵間久, 人心歸之. 朝廷倚以爲重, 天下稱爲韓․范.”라
13-31 【보補】 한위공韓魏公(한기韓琦)이 연안延安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밤에 어떤 사람이 비수를 들고 침실 안으로 들어오자, 한위공이 일어나 물었다.
“누구냐?”
한기韓琦
“저는
간의대부諫議大夫(한기)를 죽이러 왔습니다.”
注+① ≪한충헌가전韓忠獻家傳≫에 말하였다. “한위공韓魏公은 휘諱가 기琦, 자字가 치규穉圭로, 상주相州 사람이다. 〈송宋 인종仁宗〉 천성天聖 5년(1027)에 진사進士 제2등으로 합격했는데, 〈합격자 이름을 부를 때〉 막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태사太史가 태양 아래에 〈오색 빛깔의〉 구름이 나타났다고 아뢰었다. 이후에 영종英宗과 신종神宗 두 조정에서 재상을 역임하였고, 〈세상을 떠난 뒤에〉 ”
“
입니다”
注+② 서하국西夏國은 〈당시에〉 한창 장원張元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저는 차마 할 수 없으니, 간의대부의 금대金帶만 얻으면 충분합니다.”
마침내 금대를 가지고 떠났고, 한위공도 이 일에 관해서 징벌하지 않았다.
注+③ ≪송사宋史≫ 〈한기열전韓琦列傳〉에 말하였다. “〈서평왕西平王〉 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한기가 마침 촉蜀에서 돌아와 서쪽 군대의 형세를 매우 자세히 논의하니 즉시 섬서안무사陝西安撫使에 임명하였다. 한기가 과 함께 병영에 오랫동안 있었는데, 인심이 그들에게 귀의하였다. 조정에서 〈그들에게〉 의지하면서 중시하니 천하 사람들이 한범韓范(한기와 범중엄)이라고 일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