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江州諸子多事豪侈하니 江州不悅이라 休尙爲郢府主簿하여 過九江에 拜別하니 顯達語之曰
即取於前
하여 燒除之
注+① 南齊書曰 “陳顯達, 彭城人. 仕宋, 以軍功封彭澤縣子. 武帝徵爲侍中, 進征南大將軍․江州刺史. 謙厚有智計. 自以人微位重, 每遷官有畏懼之色. 子十餘人, 家旣豪富, 與敬則諸兒, 竝精車牛, 麗服飾. 顯達誡之曰 ‘我本意不及此, 汝勿以富貴凌人.’ 豫廢鬱林之勳, 進爵爲公. 東昏立, 內懷疑怖, 擧兵襲建業, 敗死, 子皆伏誅.”하다
20-17 【보補】 진강주陳江州(진현달陳顯達)의 아들들이 대부분 호사와 사치를 일삼아 진강주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들〉 진휴상陳休尙이 영부주부郢府主簿가 되어 구강九江을 지나면서 찾아와 작별을 고하자, 진현달이 말했다.
“
는
왕씨王氏와
사씨謝氏 집안에서나 쓰는 물건이다. 너는 이런 물건을 잡을 것 없다.”
그러고는 바로 가져다가 면전에서 불태워 버렸다.
注+① ≪남제서南齊書≫에 말했다. “진현달陳顯達은 팽성彭城 사람이다. 유송劉宋에서 벼슬해 군공軍功을 세워 팽택현자彭澤縣子에 봉해졌다. 무제武帝(소색蕭賾)가 불러서 시중侍中으로 삼았고,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과 강주자사江州刺史로 승진하였다. 겸손하고 후덕하였으며 지략이 있었다. 스스로 사람은 미천한데 지위는 높다고 생각하여 관직과 작위가 오를 때마다 두려워하는 기색을 띄었다. 아들이 십 여 명이었는데 집안이 부귀해지자 왕경칙王敬則의 자식들과 나란히 거마車馬를 치장하고 복식服飾을 화려하게 하였다. 진현달이 훈계하며 ‘내 본래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너희들은 부귀하다고 다른 사람을 깔보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울림왕鬱林王(소소업蕭昭業)을 폐위하는 데 참여한 공로로 작위가 공公으로 올랐다. 동혼후東昏侯(소보권蕭寶卷)가 즉위하자 속으로 의심과 두려움을 품고서 거병하여 건업建業을 쳤다가 패하여 죽었고 아들들도 모두 복주伏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