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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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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昶 未達時 家在京口注+① 晉安帝紀曰 “昶, 字彥達, 平昌人. 父馥, 中護軍. 昶矜嚴, 有志局, 少爲王恭所知. 豫義旗之勳, 遷丹陽尹. 盧循旣下, 昶慮事不濟, 仰藥而死.” 嘗見王恭 乘高輿하고 被鶴氅裘한대 于時 微雪이라 於籬間窺之하고 歎曰
眞神仙中人이로다하다


26-8 맹창孟昶이 현달하지 못했을 때 집이 경구京口에 있었다.注+왕소지王韶之의 ≪진안제기晉安帝紀≫에 말하였다. “맹창孟昶언달彥達로, 평창현平昌縣 사람이다. 부친 맹복孟馥중호군中護軍을 역임하였다. 맹창은 근엄하고 의지와 도량을 지니고 있었고, 젊었을 때 왕공王恭지우知遇를 입었다. 으로 단양윤丹陽尹으로 승진하였다. 이 〈도성을 공격해〉 내려온 뒤에 한번은 왕공王恭이 큰 수레를 타고 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당시에 가는 눈발이 날렸다. 맹창이 울타리 사이에서 그를 엿보면서 감탄하였다.
“이 사람은 정말 신선 세계의 사람이로구나.”


역주
역주1 義軍에 참여한 공훈 : 東晉 安帝 元興 3년(404)에 桓玄이 제위를 찬탈하자, 劉裕가 義軍을 일으켜 토벌했는데, 당시 孟昶은 유유의 長史로서 참여하여 공훈을 세웠고, 그로 인해 丹陽尹이 되었다.
역주2 盧循 : ?~411. 范阳郡 涿县 사람으로, 字는 于先이고, 어릴 때 이름은 元龙이다. 東晉 말기에 종교집단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孫恩의 매부로, 손은이 죽자 교단을 통솔하고 동진에 대항하여 도성인 建康을 두 차례 공격하였다.
역주3 맹창은……죽었다 : 東晉 安帝 義熙 6년(410)에 盧循이 도성을 공격하여 劉毅가 이끌던 관군을 격파하자, 尙書左僕射(상서좌복야) 孟昶은 불안에 떨다가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역주4 鶴氅裘(학창구) : 학의 날개 깃털로 만든 겉옷이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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