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昶
이 未達時
에 家在京口
注+① 晉安帝紀曰 “昶, 字彥達, 平昌人. 父馥, 中護軍. 昶矜嚴, 有志局, 少爲王恭所知. 豫義旗之勳, 遷丹陽尹. 盧循旣下, 昶慮事不濟, 仰藥而死.”라 嘗見王恭
이 乘高輿
하고 被鶴氅裘
한대 于時
에 微雪
이라 昶
이 於籬間窺之
하고 歎曰
26-8
맹창孟昶이 현달하지 못했을 때 집이
경구京口에 있었다.
注+① 왕소지王韶之의 ≪진안제기晉安帝紀≫에 말하였다. “맹창孟昶은 자字가 언달彥達로, 평창현平昌縣 사람이다. 부친 맹복孟馥은 중호군中護軍을 역임하였다. 맹창은 근엄하고 의지와 도량을 지니고 있었고, 젊었을 때 왕공王恭의 지우知遇를 입었다. 으로 단양윤丹陽尹으로 승진하였다. 이 〈도성을 공격해〉 내려온 뒤에 ” 한번은
왕공王恭이 큰 수레를 타고
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당시에 가는 눈발이 날렸다. 맹창이 울타리 사이에서 그를 엿보면서 감탄하였다.
“이 사람은 정말 신선 세계의 사람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