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中丞
은 在都
하고 弟道存
은 爲江夏內史
할새 時
에 東土旱儉
하여 都下米貴
하니 道存
이 慮中丞貧乏
하여 遣吏載五百
米餉之
하다 中丞呼吏語曰
我在彼三載로대 去之日에 不辦有路糧이어늘 郎至未幾한대 何縁得有此米오 可載還하라하니
中丞不聽
하니 竟載還江夏
注+① 宋書曰 “孔顗, 字思遠, 會稽山陰人. 祖琳之, 贈太常, 父邈, 楊州治中. 顗骨鯁有風力, 以是非爲己任. 口吃, 好讀書. 擧秀才, 補主簿, 官至御史中丞. 道存, 官至南海太守.”하다
2-3【보補】공중승孔中丞(공의孔顗)은 수도에 있고 아우 공도존孔道存은 강하내사江夏內史가 되었을 때였다. 당시에 동쪽 지역에 가뭄이 들어 수도의 쌀값이 비쌌다. 공도존은 형 공중승이 궁핍할 것을 염려하여 관리를 보내 500곡斛의 쌀을 실어다 주게 하였다. 공중승이 관리를 불러 말하였다.
“내가 그곳에 3년간 있었지만 〈관직을〉 떠나는 날에 길에서 먹을 식량을 마련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우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어떻게 이 쌀을 얻을 수 있었는가? 싣고 돌아가라.”
“예로부터 쌀을 싣고 물을 거슬러 올라간 일은 없습니다.”
공중승이 받아주지 않아 결국 싣고
강하江夏로 돌아갔다.
注+① ≪송서宋書≫ 〈공의전孔顗傳〉에 말하였다. “공의孔顗는 자字가 사원思遠이고 회계會稽 산음山陰 사람이다. 조부 공림지孔琳之는 태상太常에 추증되었고, 부친 공막孔邈은 양주치중楊州治中이었다. 공의는 강직剛直하고 기상이 있었으며 시비是非를 가리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말을 더듬었고 독서를 좋아하였다.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주부主簿에 보임되었고 관직이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이르렀다. 공도존孔道存은 관직이 남해태수南海太守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