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元珍
注+① 北史曰 “祖瑩, 字元珍, 范陽遒人也. 祖嶷, 馮翊太守, 父季真, 中書侍郎. 瑩八歲能誦诗书, 父母恐其耽书成疾. 瑩密藏火, 父母寝, 燃火读书. 以才名, 拜太学博士, 歷國子祭酒․黃門侍郎. 以文學見重一時.”이 爲彭城王參軍
注+② 北史曰 “彭城王勰, 獻文皇帝子. 敏而耽學, 雅好屬文.”時
에 尚書令王肅
이 曽於省中
에 詠悲平城詩
注+③ 詩云 “悲平城 驅馬入雲中 陰山常晦雪 荒松無罷風”라 彭城
이 甚嗟其美
하여 欲使更詠
호대 乃失語云 悲彭城詩
라하니 肅因戱云
卿은 定是神口라 今日不得卿이면 幾爲吴子所屈이라하다
21-11 【
보補】
조원진祖元珍(
조형祖瑩)이
注+① ≪북사北史≫ 〈조형전祖瑩傳〉에 말하였다. “조형祖瑩은 자字가 원진元珍이고, 범양范陽 주遒사람이다. 조부 조억祖嶷은 풍익태수馮翊太守를 지냈고 부친 조계진祖季真은 중서시랑中書侍郎을 지냈다. 조형은 8세 때 ≪시경≫과 ≪서경≫을 암송할 수 있었는데, 부모는 그가 책에 탐닉하여 병을 얻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조형은 몰래 불을 감추어두었다가 부모가 잠이 들면 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인재로 이름나 태학박사太学博士에 제수되었고, 국자좨주國子祭酒․황문시랑黃門侍郎을 역임하였다. 문학文學으로 당대에 인정을 받았다.” 팽성왕彭城王(
원협元勰)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적에,
注+② ≪북사北史≫에 말하였다. “팽성왕彭城王 은 헌문황제獻文皇帝(탁발홍拓跋弘)의 아들이다. 영민하고 학문에 탐닉하였고 평소 문장 짓는 것을 좋아하였다.” 상서령尚書令 이
성省 안에서 ‘
비평성悲平城’ 시를 읊은 적이 있었다.
注+③ 비평성시悲平城詩의 내용은 이렇다.
“을 슬퍼하노라
말 달려 운중雲中에 들어가니
음산陰山은 늘 음침하고 눈발 내려
황량한 소나무 바람 잘 날 없구나.” 팽성왕이 그 시의 훌륭함에 깊이 감탄하여 〈왕숙에게〉 다시 읊게 하고자 하다가 말을 잘못하여 ‘
비팽성悲彭城’이라고 하였다. 왕숙이 놀리며 말하였다.
“무슨 뜻으로 ‘비평성’을 ‘비팽성’이라 하십니까?”
“‘비팽성’이라는 시도 있는데 왕공께서 아직 보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경은 정말 귀신같은 언변을 지녔구려. 오늘 경이 없었더라면
에게 꿀릴 뻔 했소.”
注
◦ 왕세무王世懋:원협元勰이 ‘비팽성悲彭城’이라 잘못 말했던 것이, 또한 결국 참언讖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