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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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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元珍注+① 北史曰 “祖瑩, 字元珍, 范陽遒人也. 祖嶷, 馮翊太守, 父季真, 中書侍郎. 瑩八歲能誦诗书, 父母恐其耽书成疾. 瑩密藏火, 父母寝, 燃火读书. 以才名, 拜太学博士, 歷國子祭酒․黃門侍郎. 以文學見重一時.” 爲彭城王參軍注+② 北史曰 “彭城王勰, 獻文皇帝子. 敏而耽學, 雅好屬文.” 尚書令王肅 曽於省中 詠悲平城詩注+③ 詩云 “悲平城 驅馬入雲中 陰山常晦雪 荒松無罷風” 彭城 甚嗟其美하여 欲使更詠호대 乃失語云 悲彭城詩라하니 肅因戱云
何意悲平城 爲悲彭城也
祖在坐라가 即云
有所悲彭城이로대 王公自未見耳이니이다
肅云
可爲誦之하라
卽應聲曰
悲彭城하노라
楚歌四面起하니
屍積石梁亭하고
血流雎水裏로다
彭城退謂祖曰
定是神口 今日不得卿이면 幾爲吴子所屈이라하다
【頭註】
王云 “勰誤道悲彭城, 亦竟成讖.


21-11 【조원진祖元珍(조형祖瑩)이注+① ≪북사北史≫ 〈조형전祖瑩傳〉에 말하였다. “조형祖瑩원진元珍이고, 범양范陽 사람이다. 조부 조억祖嶷풍익태수馮翊太守를 지냈고 부친 조계진祖季真중서시랑中書侍郎을 지냈다. 조형은 8세 때 ≪시경≫과 ≪서경≫을 암송할 수 있었는데, 부모는 그가 책에 탐닉하여 병을 얻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조형은 몰래 불을 감추어두었다가 부모가 잠이 들면 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인재로 이름나 태학박사太学博士에 제수되었고, 국자좨주國子祭酒황문시랑黃門侍郎을 역임하였다. 문학文學으로 당대에 인정을 받았다.” 팽성왕彭城王(원협元勰)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적에,注+② ≪북사北史≫에 말하였다. “팽성왕彭城王 헌문황제獻文皇帝(탁발홍拓跋弘)의 아들이다. 영민하고 학문에 탐닉하였고 평소 문장 짓는 것을 좋아하였다.” 상서령尚書令 안에서 ‘비평성悲平城’ 시를 읊은 적이 있었다.注+비평성시悲平城詩의 내용은 이렇다.
을 슬퍼하노라
말 달려 운중雲中에 들어가니
음산陰山은 늘 음침하고 눈발 내려
황량한 소나무 바람 잘 날 없구나.”
팽성왕이 그 시의 훌륭함에 깊이 감탄하여 〈왕숙에게〉 다시 읊게 하고자 하다가 말을 잘못하여 ‘비팽성悲彭城’이라고 하였다. 왕숙이 놀리며 말하였다.
“무슨 뜻으로 ‘비평성’을 ‘비팽성’이라 하십니까?”
조원진이 그 자리에 있다가 즉시 말하였다.
“‘비팽성’이라는 시도 있는데 왕공께서 아직 보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왕숙이 말하였다.
“읊어 보라.”
〈조원진이〉 즉시 응대하였다.
을 슬퍼하노라
나라 노래 사방에서 일어나니
시신이 석량정石梁亭에 쌓여 있고
핏물이 수수雎水로 흘러드네.”
팽성왕이 물러나와 조원진에게 말하였다.
“경은 정말 귀신같은 언변을 지녔구려. 오늘 경이 없었더라면 에게 꿀릴 뻔 했소.”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원협元勰이 ‘비팽성悲彭城’이라 잘못 말했던 것이, 또한 결국 참언讖言이 되었다.


역주
역주1 元勰 : 473~508. 字는 彥和이고 北魏 献文帝(拓跋弘)의 여섯째 아들이다. 원협은 北魏 孝文帝(拓跋宏)의 이복동생으로서 효문제의 신임을 받았으나, 효문제 사후에 반역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받아 조카인 宣武帝(拓跋恪)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옛 帝王․賢人들부터 魏나라 자손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한 30권의 ≪要略≫을 편찬했다고 하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역주2 王肅 : 464~501. 字는 恭懿, 琅邪郡 临沂(지금의 山东 临沂) 사람이다. 처음에 齐 武帝(萧賾)에게 벼슬하였는데, 太和 17년(493)에 父兄이 모두 제 무제에게 죽임을 당하여 北魏로 망명하여 북위의 名臣이 되었다.
역주3 平城 : 古地名으로 지금의 山西省 大同市에 해당한다. 漢 高祖(劉邦)가 직접 군대를 인솔하고 흉노를 치기 위해 출정했다가 7일 동안 흉노의 30만 대군에게 포위를 당했던 곳이다.(≪史記≫ 〈韓信列傳〉)
역주4 彭城 : 徐州의 옛 명칭으로 지금의 江苏省을 가리킨다. 이곳은 기원전 205년에 楚나라와 漢나라가 일대 결전을 치룬 역사적인 곳으로, 56만의 보병을 이끈 한나라의 劉邦이 3만의 기병 정예군을 이끈 초나라 項羽에게 궤멸당한 곳이다.
역주5 핏물이……흘러드네 : ≪史記≫ 〈高祖本紀〉에 “項羽가 漢나라 군사를 격퇴하고 穀水․泗水 및 雎水에 들어가니 죽은 자가 20 여만 명이어서 물이 흐르지 않았다.”라고 하였는데, 徐廣이 주를 달기를 “수수는 彭城 靈壁縣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다.(≪世說音釋≫)
역주6 吳子 : 王肅은 齊에서 처음 벼슬하였는데, 제나라는 建康에 수도를 두었다. ≪史略≫ 注에 “建康은 吳地이기 때문에 〈왕숙을〉 ‘오자’라고 한 것이다.”라 하였다.(≪世說音釋≫)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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