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歆
과 王朗
注+① 魏書曰 “朗, 字景興, 東海剡人. 魏司徒.”이 俱乘船避亂
에 有一人欲依附
한대 歆輒難之
하니 朗曰
本所以疑가 正爲此耳라 既已納其自託하니 寧可以急相棄邪아하고
遂携拯如初
하다 世以此
로 定華王之優劣
注+② 華嶠譜敍曰 “歆爲下邽令, 漢室方亂, 乃與同志士鄭泰等六七人避世, 自武關出. 道遇一丈夫獨行, 願得與俱, 皆哀許之. 歆獨曰 ‘不可. 今在危險中, 禍福患害, 義猶一也. 今無故受之, 不知其義. 若有進退, 可中棄乎.’ 衆不忍, 卒與俱行, 丈夫中道墮井, 皆欲棄之. 歆乃曰 ‘已與俱矣, 棄之不義.’ 卒共還, 出之而後別.”하다
注
李云 “非直有優劣, 直君子小人之殊途也. 彼閑時愛買好, 急則不顧, 蓋自買好時已存此心矣. 小人擧事, 不慮始, 大率類此. 憑準若此, 此國家所以罔攸賴也.”
1-20
화흠華歆과
왕랑王朗이
注+① ≪위서魏書≫에 “왕랑王朗은 자字가 경흥景興이고 동해東海 염剡 사람이다. 위魏나라 사도司徒이다.” 하였다. 함께 배를 타고 피란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함께 데려가 주기를 원하였다. 화흠은 대뜸 난색을 표하였는데 왕랑이 말하였다.
“다행히 〈자리가〉 아직 넉넉하니 어찌 안 될 게 있겠는가.”
나중에 적이 추격해오자 왕랑이 데려가던 사람을 내버리려 하니, 화흠이 말하였다.
“〈내가〉 본래 머뭇거렸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소. 이미 자신을 의탁해온 사람을 받아준 이상 어찌 위급하다는 이유로 버릴 수 있겠소.”
마침내 처음처럼 그를 데려가 구해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일로 화흠과 왕랑의
우열優劣을 정하였다.
注+② 화교華嶠의 ≪보서譜敍≫에 말하였다. “화흠이 하규령下邽令이 되었을 때 한漢 왕실이 한창 어지러웠다. 마침내 뜻을 같이하는 선비 등 6, 7인과 더불어 세상을 피해 을 나갔다. 도중에 홀로 가던 한 장부丈夫를 만났는데 그가 함께 가기를 원하자 모두 불쌍히 여겨 허락하였다. 화흠만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여 화복禍福과 환해患害에 있어서 모두 의리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무 이유 없이 그를 받아주려 하니 그 의리를 모르겠습니다. 만약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한다면 중도에 그를 버리겠습니까?’ 하였다. 무리가 차마 버려두지 못하고 마침내 데리고 같이 갔는데, 그 장부가 도중에 우물에 빠지자 모두 그를 버리고자 하였다. 화흠이 ‘이미 함께하였는데 버리는 것은 의리가 아닙니다.’ 하고 마침내 같이 돌아가 우물에서 꺼내준 뒤 작별하였다.”
注
◦ 유신옹劉辰翁:세월을 거친 후에 그 어려움을 아는 것이니, 그 덕분에 이 말을 한 것이다.
注
◦ 유진옹劉辰翁:관녕管寧이 화흠華歆보다 낫고, 화흠이 또 왕랑王朗보다 나은 것을 사람들은 분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注
◦ 이지李贄:단지 우열優劣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바로 군자와 소인의 차이이다. 저들이 한가할 때 호의를 베풀기를 좋아하다가 위급할 때는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이는 스스로 호의를 베풀 때 이미 이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소인의 일처리에 초심初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대체로 이와 유사하다. 이와 같은 것에 근거하니, 이것이 국가가 〈그들에게〉 의뢰할 수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