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參軍
注+① 南史曰 “何思澄, 字元靜, 東海人. 父敬叔, 齊長城令. 思澄少勤學工文, 爲遊廬山詩, 沈約大相稱賞, 自以爲弗逮. 仕至湘東王錄事參軍.”이 與族弟水部
注+② 梁書曰 “何遜, 字仲言, 東海剡人. 曾祖承天, 宋御史中丞. 遜八歲能賦詩, 文章, 與劉孝綽竝重於世, 世謂何․劉. 官至尙書水部郞.”와 散騎
注+③ 南史曰 “何子朗, 字世明. 早有才思, 周捨每與談, 服其精理. 卒於國山令.”로 俱擅文名
한대 時人
이 爲之語曰
9-30 【
보補】
하참군何參軍(
하사징何思澄)이
注+① ≪남사南史≫ 〈하사징열전何思澄列傳〉에 말하였다. “하사징은 자字가 원정元靜으로, 동해東海 담郯 사람이다. 부친 하경숙何敬叔은 〈남조南朝〉 제齊나라의 장성현령長城縣令을 역임하였다. 하사징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부지런하고 문장을 잘 지었는데, 〈유려산遊廬山〉이라는 시를 지었을 때 심약沈約이 크게 칭찬하면서 〈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관직이 상동왕湘東王(남조 양梁 원제元帝 소역蕭繹)의 녹사참군錄事參軍에 이르렀다.” 족제族弟인
하수부何水部(
하손何遜)․
注+② ≪양서梁書≫ 〈하손열전何遜列傳〉에 말하였다. “하손은 자字가 중언仲言으로, 동해東海 담郯 사람이다. 증조부 하승천何承天은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역임하였다. 하손은 8세에 시를 지었고, 문장은 유효작劉孝綽과 더불어 세상에 중시되어 세상 사람들이 하何․유劉라고 병칭하였다. 관직은 상서수부랑尙書水部郞에 이르렀다.”하산기何散騎(
하자랑何子朗)와
注+③ ≪남사南史≫ 〈하자랑열전何子朗列傳〉에 말하였다. “하자랑은 자字가 세명世明이다. 일찍부터 재사才思(재주와 사고력)를 지녔는데, 주사周捨가 매번 그와 담론할 때마다 그의 정밀한 논리에 탄복하였다. 국산현령國山縣令으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더불어 모두
문명文名을 독점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해東海의 하씨 세 명 가운데 하자랑이 가장 훌륭하다.”
“외부의 평가는 전혀 옳지 않으니, 진실로 마땅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