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생이 만약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는 선비를 감식하지 않을 것이다.”注+① 기생期生은 저상褚爽의 어릴 적 자字이다. ≪속진양추續晉陽秋≫에 말하였다. “저상褚爽은 자字가 무홍茂弘이고, 하남河南 사람이다. 태부인 저부褚裒의 손자이고 비서감 저소褚韶의 아들이다. 태부 사안謝安이 그가 어렸을 때 만나보고서 탄복하기를, ‘저기생이 만약 훌륭하게 되지 않다면 나는 다시는 선비에 대해 논하지 않겠다.’ 하였다. 성장하여서 과연 출중하였으며 기풍이 있었다. 노장老莊의 말을 좋아하였고 당대의 영예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로지 은중감殷仲堪과만 교제하였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중서랑中書郞․의흥태수義興太守가 되었다. 딸이 공제恭帝(사마덕문司馬德文)의 황후皇后가 되었다.
역주
역주1謝公(谢安) :
320~385. 字는 安石이고, 陈郡 阳夏 사람이다. 東山에 은거하였다가 40세 이후 벼슬하여, 吴兴太守․侍中․吏部尚书․后将军․扬州刺史․尚书事 등 고관을 지냈다. 죽은 뒤 太傅에 추증되었고, 훌륭한 재상으로 평가된다. 謝東山․谢太傅․谢安石․谢相․谢公으로 불린다.(≪晉書≫ 〈謝安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