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君平
이 疾篤
注+① 王隱晉書曰 “孔坦, 字君平, 會稽山陰人. 善春秋, 有文辨. 歷太子舍人, 累遷廷尉卿.”한대 庾司空
이 爲會稽
러니 省之
注+② 晉陽秋曰 “庾冰, 字季堅, 太尉亮之弟也. 少有檢操, 亮常器之曰 ‘吾家晏平仲.’ 累遷車騎將軍․江州刺史.”에 相問訊
이 甚至
하여 爲之流涕
라 庾旣下牀
한대 孔慨然曰
大丈夫將終에 不問安國寧家之術하고 迺作兒女子相問이온여하다
庾聞
에 回謝之
하고 請其話言
注+③ 王隱晉書曰 “坦方直而有雅望.”하다
11-15
공군평孔君平(
공탄孔坦)의 병이 위독할 때,
注+① 왕은王隱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공탄孔坦은 자字가 군평君平으로, 회계會稽 산음山陰 사람이다. ≪춘추春秋≫에 정통하였고, 문장을 잘 짓고 변론에 뛰어났다. 태자사인太子舍人을 역임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정위경廷尉卿이 되었다.” 회계내사會稽內史로 있던
유사공庾司空(
유빙庾冰)이 문안하러 왔는데,
注+② 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유빙庾冰은 자字가 계견季堅으로, 태위太尉 유량庾亮의 아우이다. 젊을 때부터 절개와 지조를 지녔는데, 유량이 항상 그를 중시하여 ‘우리 집안의 이다.’ 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거기장군車騎將軍과 강주자사江州刺史가 되었다.” 문안하는 태도가 매우 지극하여 그를 위해 눈물까지 흘렸다. 유사공이 〈공군평의〉 침상을 내려온 뒤에 공군평이 개탄하며서 말하였다.
“대장부가 장차 세상을 떠나려 하는데, 국가를 편안하게 할 방법은 묻지 않고 아녀자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문안하는구나.”
유사공이 〈그 말을〉 듣더니 돌아와 사죄한 뒤에
화언話言(훌륭한 말씀)을 청하였다.
注+③ 왕은王隱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공탄孔坦은 〈인품이〉 단정하고 강직하여 훌륭한 명망이 있었다.”
注
◦ 유진옹劉辰翁:이 경우는 주숭周嵩의 일화(11-4)에 견줄 바가 아니다.
注
◦ 유신옹劉辰翁:〈본문의〉 ‘화언話言’ 이하의 내용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