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參軍
은 少有思理
注+① 南史曰 “張譏, 字直言, 淸河武城人. 祖僧寶, 梁太子洗馬, 父仲悅, 梁尙書祠部郞. 譏幼聰俊, 有思理. 十四通孝經․論語, 篤好玄言. , 官始安王記室參軍.”라 爲國子助敎
한대 時
에 周弘正
이 在國學
하여 發周易題
할새 弘正第四弟弘直
도 亦在講席
이라 參軍
이 與弘正論義
할새 弘正
이 理小屈
하니 弘直
이 危坐厲聲
하여 助其申理
라 參軍正色曰
今日義集은 辯正名理니 雖知兄弟急難이나 四公不得有助라하다
吾每登坐
에 見張譏在席
하면 使人懍然
注+② 南史曰 “周弘正, 字思行. 父寶始, 梁司徒․祭酒. 弘正幼孤, 及弟弘讓․弘直, 爲伯父捨所養. 十歲通老子․周易. 官至國子祭酒. 弘直, 字思方, 幼聰敏, 仕梁爲湘東王記室參軍.”이라하다
9-25 【
보補】
장참군張參軍(
장기張譏)은 젊을 때부터 깊은 사고력이 있었다.
注+① ≪남사南史≫ 〈장기열전張譏列傳〉에 말하였다. “장기는 자字가 직언直言으로, 청하淸河 무성武城 사람이다. 조부 장승보張僧寶는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태자세마太子洗馬를, 부친 장중열張仲悅은 양나라의 상서사부랑尙書祠部郞을 역임하였다. 장기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사변 능력이 있었다. 14세에 ≪효경孝經≫과 ≪논어論語≫에 통달하고, 현담玄談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의〉 아들 장효칙張孝則은 의 기실참군記室參軍을 역임하였다.” 국자감國子監의
조교助敎로 있을 때, 당시
주홍정周弘正이 국자감에서 ≪주역≫의 논제를 강론했는데 주홍정의 넷째 아우
주홍직周弘直도 역시 강론의 자리에 참석하였다. 장참군이 주홍정과 의미를 토론할 때 주홍정의 논리가 조금 막히자, 주홍직이 꼿꼿이 앉아 목소리를 높여 〈막힌〉 논리를 펼칠 수 있도록 주홍정을 도와주었다. 장참군이 정색하면서 말하였다.
“오늘의
의집義集(경전의 의미를 연구하는 모임)은
명리名理(사물의 이름과 이치를 분석하는 이론)를 논변하여 바로잡는 자리이니, 비록
는 점을 알지만,
사공四公(주홍직)께서는 도움을 주면 안 됩니다.”
“내가 매번 〈강론하기 위해〉 자리에 올랐을 때마다 장기가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注+② ≪남사南史≫ 〈주랑열전周朗列傳〉에 말하였다. “주홍정周弘正은 자字가 사행思行이다. 부친 주보시周寶始는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사도司徒와 좨주祭酒를 역임하였다. 주홍정은 어릴 때 부친을 여의어 그 아우 주홍양周弘讓․주홍직周弘直과 함께 백부인 주사周捨에게 양육되었다. 10세에 ≪노자老子≫와 ≪주역周易≫에 통달하고, 관직이 국자좨주國子祭酒에 이르렀다. 주홍직은 자字가 사방思方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고, 양나라에서 벼슬하여 상동왕湘東王(원제元帝 소역蕭繹)의 기실참군記室參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