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德祖가 爲魏武主簿時에 作相國門한대 始搆榱桷에 魏武自出看하고 使人題門作活字하고 便去라 楊見即令壞之하고 既竟에 曰
門中活
은 闊字
니 王正嫌門大也
注+① 文士傳曰 “魏武爲丞相, 修常白事, 知必有反覆教, 豫爲答對數紙, 以次牒之而行. 敕守者曰‘, 必教出相反覆, 按此次第連答之.’ 已而風吹, 紙次亂, 守者不別, 而遂錯誤. 公怒推問, 修慚懼. 然以所白甚有理, 終亦是修.”라하다
21-1
양덕조楊德祖(
양수楊修)가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의
주부主簿가 되었을 때
을 만들고 있었는데, 처음에 서까래를 얹었을 때 위무제가 친히 나와서 보고는 사람을 시켜
문門에
활活자를 쓰게 하고 갔다. 양덕조가 〈그것을〉 보고 즉시 그 문을 허물게 하고 다 허물자 말하였다.
“
문門 가운데 ‘
활活’자가 있는 것은
활闊자이니,
왕王(조조)께서는 즉 문이 큰 것을 싫어하신 것이다.”
注+① 에 말하였다. “위무제魏武帝가 승상이었을 때 양수楊修는 늘 일을 아뢸 때마다 반드시 반복되는 지시가 있음을 알고 미리 몇 장의 종이에 답변을 적어 차례대로 문건을 만들어놓고 행하였다. 〈이 일을〉 맡은 자에게 신칙하기를, ‘지난번에 상주한 일은 반드시 지시가 반복되어 나올 것이니, 너는 이것을 살펴 차례대로 연이어 대답하라.’라고 일렀다. 얼마 뒤에 바람이 불어 〈답변을 적은〉 종이의 차례가 뒤섞이자 맡은 자가 분별하지 못하여 마침내 착오가 생겼다. 공이 노하여 심문하니 양수가 부끄럽고 송구해하였다. 그러나 그가 아뢴 말이 매우 조리가 있어 결국 또 양수를 옳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