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 소준蘇峻이 〈반란을 일으켜〉 석두성石頭城에 이른 뒤에 〈조정의〉 모든 관료가 달아나 흩어졌는데,注+① 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소준蘇峻이 2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횡강橫江으로부터 건너와서 장산蔣山에 이르자, 천자의 군대가 대패하였다.” 오직 시중侍中종아鍾雅만 홀로 황제(성제成帝) 곁에 있었다. 어떤 이가 종아에게 말하였다.
역주2국가가……못하고 :
≪春秋左氏傳≫ 襄公 25년 조항의 ‘군주가 어리석은데도 바로잡을 수 없고 위태로운데도 구원할 수 없으며 임금이 죽었는데도 따라 죽지 못하였다.[君昏不能匡 危不能救 死不能死]’라는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
역주3董狐가……들고 :
동호가 역사책에 이 사실을 기록할 것이라는 뜻이다. ‘동호’는 春秋시대 晋나라의 史官으로, 大夫 趙盾이 그 임금인 靈公이 시해당할 상황을 보고 달아났다가 趙穿이 영공을 죽인 것을 보고 다시 돌아오자, “조돈은 대신으로서 아직 국경을 넘어가지 않고, 국내에 있으면서 반란이 일어난 것을 보고도 돌아오지 않으며, 돌아온 뒤에도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다.” 하면서, 조돈이 직접 죽인 것은 아니나 간접적으로 임금을 해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조돈이 그 임금을 죽였다.” 기록하여 조정의 신하들에게 보여주었다.(≪春秋左氏傳≫ 宣公 2년)
역주4鍾仲常 :
≪世說音釋≫에서 “鍾繇의 아우는 終演이니, ‘중상’은 틀림없이 종연의 字일 것이다.” 했는데, 종요의 자가 元常이므로 ≪세설음석≫의 주장이 近理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