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裴使君
과 何鄧二尙書
注+① 何晏ㆍ鄧颺.와 劉太常兄弟
로 語
하면 使人神思淸發
하여 昏不假寐
라 自此以還
으로 殆白日欲寢矣
注+② 晉書曰 “劉寔, 字子眞, 平原高唐人. 家貧苦, 賣牛衣以自給. 好學讀書, 博通古今, 淸身潔己, 行無玷缺. 初鍾會鄧艾伐蜀, 或問二將其平蜀乎? 寔曰 ‘破蜀必矣, 而皆不還.’ 竟如其言. 寔以世多進趣, 廉遜道缺, 作崇讓論, 以矯之. 弟智, 字子房, 貞素有兄風, 以儒行稱.”라하다
15-9 【보補】 관공명管公明(관로管輅)이 말하였다.
“
배사군裴使君(
배휘裴徽),
하상서何尙書(
하안何晏),
등상서鄧尙書(
등양鄧颺),
注+① 〈하등何鄧은〉 하안何晏과 등양鄧颺이다. 유태상劉太常(
유식劉寔) 형제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신과 생각을 맑게 일어나게 만들어 밤에도 잠잘 겨를이 없다. 이제부터는 아마도 대낮에나 잠들려 할 것이다.”
注+② ≪진서晉書≫ 〈유식전劉寔傳〉에 말하였다. “유식劉寔은 자字가 자진子眞이고 평원平原 고당高唐 사람이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우의牛衣를 팔아서 생활하였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책을 읽어 고금古今에 두루 정통하였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행동에 전혀 잘못이 없었다. 처음에 종회鍾會와 등애鄧艾가 촉蜀나라를 칠 때, 어떤 이가 ‘두 장군이 촉나라를 평정하겠습니까?’라고 묻자, 유식이 대답하기를 ‘촉나라를 평정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두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결국 그가 말한 대로 되었다. 유식은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염손廉遜하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숭양론崇讓論〉을 지어 〈풍속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아우 유지劉智는 자字가 자방子房이다. 깨끗한 절조를 지녀 형과 닮은 풍모가 있었고 유자儒者의 행실로 칭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