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門
은 如市
나 臣心
은 如水
注+① 班固漢書曰 “鄭崇, 字子游. 高密大族, 祖父以徙平陵. 崇少爲郡文學史, 大司徒傅喜薦, 擢尚書僕射. 數見諫諍, 上納用之. 毎見曳革履, 上曰 ‘我識鄭尚書履聲.’”니이다하다
3-1【보補】한漢 애제哀帝(유흔劉欣)가 상서尙書 정숭鄭崇에게 물었다.
“경의 집 문 앞은 어찌하여 〈시끄러운〉 저잣거리 같은가?”
“신의 집 문 앞은 〈시끄러운〉 저잣거리 같지만 신의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습니다.”
注+①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정숭전鄭崇傳〉에 말하였다. “정숭鄭崇은 자字가 자유子游이다. 고밀高密의 명문거족인데 조부가 남의 비방 때문에 평릉平陵으로 이주하였다. 정숭은 젊은 나이에 군郡의 문학사文學史가 되었고, 대사도大司徒 부희傅喜가 천거하여 상서복야尙書僕射에 발탁되었다. 자주 황제를 알현하여 간쟁하였는데 황제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썼다. 알현할 때마다 가죽신을 끌자, 황제가 ‘나는 정상서鄭尚書의 신발 소리를 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