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侯가 於荊州敗績還하여 未得用일새 王丞相이 與人書하여 曰
雅流弘器
를 何可得遺
注+① 鄧粲晉紀曰 “顗爲荊州, 始至, 而建平民傅密等, 叛蜀賊. 顗狼狽失據, 陶侃救之, 得免. 顗至武昌, 投王敦. 敦更選侃代顗, 顗還建康, 未即得用也.”리오라하다
15-42 주후周侯(주의周顗)가 형주荊州에서 패하여 돌아와 아직 관직에 임명되지 않았을 때, 왕승상(왕도王導)이 어떤 이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
고아高雅하고 그릇이 큰 인물을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注+① 등찬鄧粲의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주의周顗가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어 처음 이르렀는데, 건평建平 백성 부밀傅密 등이 반란을 일으켜 을 맞아들였다. 주의가 낭패를 당하여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도간陶侃이 그를 구해주어 위기를 면하였다. 주의는 무창武昌에 이르러 왕돈王敦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왕돈이 다시 도간을 선발하여 주의를 대신하게 하였으므로, 주의가 건강建康에 돌아왔을 때 즉시 등용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