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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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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純注+① 吳書曰 “張純, 字元基, 敦之子.” 吳錄曰 “純, 少厲操行, 學博才秀, 切問捷對, 容止可觀. 拜郎中, 補廣德令, 治有異迹, 擢太子輔義都尉.”․ 張儼注+② 吳錄曰 “張儼, 字子節, 吳人. 弱冠知名, 以博聞多識, 拜大鴻臚. 使于晉, 皓曰‘今南北通好, 以君有出境之才. 故相屈行.’ 對曰‘, 蒙其榮耀, 無古人延譽之美, 磨厲鋒鍔, 思不辱命.’ 既至, 賈充․裴秀․荀朂等, 欲傲以所不知, 而不能屈. 僕射羊祜․尚書何禎竝結.”․朱異注+③ 吳志曰 “朱異, 字季文, 吳郡吳人, 朱桓子也. 以父任爲郎, 拜騎都尉, 代桓領兵. 孫權與論 攻戰, 辭對稱意, 權謂異從父驃騎將軍據曰‘本知季文定, 見之復過所聞.’” 俱童少知名이라 嘗同詣驃騎將軍朱據注+④ 吳志曰 “朱據, 字子範, 吳郡吳人. 有姿貌膂力, 又能論難. 黄武初, 拜五官郎中, 時選曹尚書暨豔, 疾貪汙在位, 欲沙汰之, 據以爲‘天下未定, 宜以功覆過, 棄瑕取用, 舉清厲濁, 足以沮勸. 若一時貶黜, 懼有後咎,’ 豔不聽, 卒敗. 權咨嗟將率, 追思吕蒙․張温, 以據才兼文武 , 可以繼之, 拜建議校尉.”한대 據欲試之하여 語曰
老鄙相聞하고 饑渇甚矣 以迅驟爲功하고 以輕疾爲妙하니 其爲吾各賦一物然後 入坐하라하니
三人 皆隨目賦成이라 據大笑悅注+⑤ 儼賦犬曰 “守則有嚴, 出則有獲, , 書名竹帛.” 純賦席曰 “席以冬設, 簟爲夏施, 揖讓而坐, 君子攸宜.” 異賦弩曰 “南嶽之幹, 鍾山之銅, 應機命中, 獲隼高墉.”하다


22-9 장순張純注+① ≪오서吳書≫에 말하였다. “장순張純원기元基이고, 장돈張敦의 아들이다.”
오록吳錄≫에 말하였다. “장순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방정하였고, 박식하고 재주가 빼어났으며 절실히 묻고 신속하게 대답하였고 용모와 행동거지가 볼 만하였다. 낭중郎中에 임명되었고 광덕령廣德令에 보임되었는데 뛰어난 치적治積이 있어 태자보의도위太子輔義都尉에 발탁되었다.”
장엄張儼注+② ≪오록吳錄≫에 말하였다. “장엄張儼자절子節이고, 오군吳郡 사람이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이름이 알려졌으며, 박학다식하여 에 임명되었다. 나라에 사신 갈 때 가 말하기를, ‘지금 남쪽과 북쪽이 우호적으로 교통하는데 그대가 국경을 초월한 재주를 지녔으니 다녀오시오.’라고 하자, 〈장엄이〉 답하기를, ‘사신使臣으로 가는 영광을 받았으니 옛사람의 영예로운 아름다움은 없으나 칼날을 갈아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진나라에〉 도착한 뒤 가충賈充배수裴秀순욱荀朂 등이 그가 모르는 것을 가지고 업신여기려 하였으나 그를 꺾을 수 없었다. 복야 양호羊祜와 상서 하정何禎이 모두 그와 두터운 우의友誼를 맺었다.” 주이朱異注+③ ≪오지吳志≫에 말하였다. “주이朱異계문季文이고 오군吳郡 사람이며 주환朱桓의 아들이다. 부친 덕으로 이 되었고,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어 〈부친인〉 주환을 이어 군대를 이끌었다. 손권孫權이 그와 함께 공격전에 대해 논의할 때 응대하는 것이 자신의 뜻과 맞자 이종부異從父인 표기장군 주거周據에게 말하기를, ‘본래 계문季文(주이)이 명쾌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만나보니 듣던 것보다 더합니다.’라고 하였다.” 모두 어려서부터 이름이 알려졌다. 한번은 같이 표기장군驃騎將軍 주거朱據注+④ ≪오지吳志≫에 말하였다. “주거朱據자범子範이고, 오군吳郡 오현吳縣 사람이다. 〈뛰어난〉 외모와 완력을 지녔고 또 토론을 잘 하였다. 황무黄武(222~229) 연간에 오관랑중五官郎中에 임명되었다. 당시 선조상서選曹尚書 이 탐욕스럽고 부패한 자들이 관직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내쫓으려고 하였는데, 주거가 말하기를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공로로써 잘못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하자 있는 자를 버리고 쓸모 있는 자를 기용하며 청렴한 자를 등용하고 부패한 자를 처벌한다면 악한 자를 저지하고 선한 자를 장려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한꺼번에 내쫓는다면 후환이 생길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염은 그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패배하였다. 손권은 군사를 거느릴 〈장수가 부족함을〉 탄식하며 뒤늦게 여몽呂蒙장온張溫을 그리워하였는데, 주거가 재주와 문무를 겸비하여 그들을 이을 수 있다고 여겨 그를 건의교위建義校尉에 임명하였다.” 찾아갔는데, 주거가 그들을 시험하여 말하였다.
“늙은이가 소문을 듣고 〈만나기를〉 매우 갈망하였네. 대개 준마駿馬는 날렵하게 달리는 것을 공으로 삼고, 맹금류는 날렵하고 빨리 나는 것을 오묘함으로 삼으니, 그대들은 나를 위해 각각 한 가지 물건에 대해 를 지은 뒤에 들어와 앉게나.”
그러자 세 사람이 모두 눈에 띄는 대로 글을 지어 완성하니, 주거가 크게 웃으며 기뻐하였다.注+장엄張儼은 개[]에 대해 를 짓기를, “집 지킬 땐 엄하고 나가서는 사냥해오네. 나라의 요, 나라의 이니 죽백竹帛에 그 이름 기록되었네.”라고 하였고, 장순張純은 돗자리[]에 대해 부를 짓기를, “돗자리는 겨울에 깔고 대자리는 여름에 펴네. 읍양하고 앉으니 군자에게 합당하리.”라고 하였으며, 주이朱異는 쇠뇌에 대해 부를 짓기를, “남악南嶽의 줄기와 종산鍾山의 쇠로 만들어, 기회 잡아 명중시켜 높은 담장의 독수리를 잡도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大鴻臚 : ‘鴻’은 大声, ‘臚’는 傳達이란 뜻이다. 秦代의 중앙관으로, 귀순한 蠻夷를 관할하는 ‘典客’에서 비롯되었는데 漢武帝 太初 1년(B.C. 104)에 ‘대홍려’로 개칭되었다. 九卿의 하나였는데, 후대에 禮部나 太常寺로 병합되었다.(≪漢書≫ 〈百官公卿表 上〉)
역주2 孫皓 : 242~284. 吳나라 최후의 황제로 字는 元宗이고, 어릴 적 이름은 彭祖이다. 孫權의 손자이며 孫和의 아들로 재위기간은 264~280년이다. 짧은 善政을 베푼 이후 暴政을 행하여 결국 국력이 쇠퇴해져 晉나라에 항복하였다. 항복 후, 歸命侯에 봉해졌고, 284년에 진나라의 수도 洛陽에서 사망하였다.(≪三國志≫ 〈吳書 孫晧傳〉)
역주3 暨豔(기염) : ?~224. 字는 子休이고, 三國시대 孫吳의 吳郡(지금의 江苏 苏州) 사람이다. 같은 군 사람인 張溫이 孫權에게 천거하여 選曹郎에 임명되었고 후에 尚書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개하고 清議를 좋아하였으나, 반대 세력에 의해 모함을 받아 자살하였다. 문집 3권이 있다.
역주4 皇皇者華 : ≪詩經≫ 〈小雅〉의 편명이다. 〈황황자화〉는 “빛 어려 환한 꽃은 언덕이며 진벌에 피어 있네. 부지런히 달리는 사나이는 행여 못 미칠까 걱정일세.[皇皇者華 于彼原濕 駪駪征夫 每懷靡及]” 라는 내용인데, 그 小序에 “〈황황자화〉는 임금이 사신을 보내는 것이다.[皇皇者華 君遣使臣也]”라고 하였다. 이후로 ‘황황자화’는 명을 받들어 出使하는 자, 곧 使臣을 가리키거나 그를 贊頌하는 典故로 쓰인다.
역주5 縞帯之好 : 춘추시대 吳나라 季札이 鄭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子産을 만나서는 오랜 친구처럼 여겨 흰 명주 띠[縞帶]를 선물하자 자산이 답례로 모시옷[紵衣]을 보낸 고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매우 두터운 友誼를 맺었음을 뜻한다.(≪春秋左氏傳≫ 襄公 29년)
역주6 : ‘快’와 같으며, ‘명쾌하다’는 의미이다.(≪世說音釋≫)
역주7 騕褭(요뇨) : 고대의 駿馬 명칭이다. ≪文選≫ 〈思玄賦〉의 李善 注에 “요뇨는 고대의 준마인데, 주둥이는 붉고 몸체는 검은 색이며 하루에 5천리를 간다.[騕褭 古之駿馬也 赤喙玄身 日行五千里]”라고 하였다.
역주8 鷹隼 : ‘鷹鶽’이라고도 쓴다. ‘鷹’은 ‘매’이고 ‘隼’은 ‘독수리’를 가리키므로, ‘응준’은 猛禽의 총칭이다.
역주9 韓盧宋鵲 : ≪字林≫ (晉人 吕忱 撰)에 “盧는 韓나라의 명견이고 㹱은 宋나라의 명견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㹱’은 ‘鵲’과 같다. 盧는 黑色이고 鵲은 白色이다.(≪世說音釋≫)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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