侯司徒가 欲與王仲回로 交友러니 仲回被徵에 遣子昱하여 候於道라 昱이 迎拜車下하니 仲回가 下答之라 昱曰
君房
이 有是言
이나 丹
이 未之許也
注+① 范曄後漢書曰 “侯覇, 字君房, 河南密人. 矜嚴有威容, 篤志好學. 師事九江太守房元, 治穀梁春秋, 爲元都講. 建武四年, 徵覇與車駕, 會壽春, 拜尙書令, 明年代伏湛爲大司徒.”일새라하다
10-5 【보補】 후사도侯司徒(후패侯霸)가 왕중회王仲回(왕단王丹)와 교유하고 싶었는데, 왕중회가 〈조정에〉 초빙되자 아들 후욱侯昱을 보내 길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후욱이 맞이하여 〈왕중회의〉 수레 아래에서 절을 하니 왕중회가 〈수레에서〉 내려 답배答拜하였다. 후욱이 말하였다.
“아버님께서 공과 친교를 맺고자 하시는데 어찌 제가 절을 받겠습니까?”
“
군방君房(후패)이 그런 말을 했지만, 나는 아직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네.”
注+①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후패열전侯覇列傳〉에 말하였다. “후패는 자字가 군방君房으로, 하남河南 밀密 사람이다. 〈그는〉 진중하고 엄숙하며 위엄 있는 모습을 지니며, 의지가 독실하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구강태수九江太守 방원房元을 스승으로 섬겨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연구하고, 방원의 이 되었다. 〈한漢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4년(28)에 후패를 〈조정에〉 초빙하고 수레를 보낸 뒤에 〈광무제가〉 수춘壽春에서 〈그를〉 만나 상서령尙書令에 제수하였고, 다음해에 을 대신하여 대사도大司徒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