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世長
이 從獵於高陵
注+① 唐書曰 “蘇世長, 雍州武功人. 祖彤, 後魏散騎常侍, 父振, 周宕州刺史. 世長十餘歲, 上書言事, 周武帝問 ‘讀何書?’ 對曰 ‘孝經․論語.’ 王世充僭號, 署行臺僕射, 世充平, 以漢南歸國.”한대 是日大獲
하여 陳禽於旌門
이라 高宗
이 顧謂群臣曰
陛下畋獵하여 薄廢萬機하여 不滿十旬하니 未爲大樂이니이다하다
11-40 【
보補】
소세장蘇世長이 〈천자를〉 따라
고릉高陵으로 사냥을 갔는데,
注+① ≪구당서舊唐書≫ 〈소세장열전蘇世長列傳〉에 말하였다. “소세장은 옹주雍州 무공武功 사람이다. 조부 소동蘇彤은 후위後魏의 산기상시散騎常侍를, 부친 소진蘇振은 북주北周의 탕주자사宕州刺史를 역임하였다. 소세장이 10여 세에 글을 올려 정사에 대해 언급하자,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가 ‘무슨 책을 읽었느냐?’ 물으니, ‘≪효경孝經≫과 ≪논어論語≫입니다.’ 대답하였다. 이 제왕을 참칭僭稱했을 때 〈소세장을〉 행대복야行臺僕射로 임명하였고, 왕세충이 〈이세민李世民에게〉 평정된 뒤에 한남漢南지역을 가지고 당나라에 귀순하였다.” 이날 사냥감을 많이 잡아서
에 진열하였다. 〈
당唐〉
이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폐하께서 사냥하시느라
만기萬機(모든
국정國政)를 폐지하여 100일도 채우지 못하셨으니, 큰 즐거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소세장蘇世長
고종은 얼굴빛이 변했는데, 잠시 뒤에 웃으며 말하였다.
“저의 개인에 대해 생각한다면 미쳤지만, 폐하의 국가에 대해 생각한다면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注
◦ 유진옹劉辰翁:소세장蘇世長은 고종高宗 시기의 인물이 아니니, 지금 〈본문에서〉 고종이라고 말한 것은 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