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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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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世長 從獵於高陵注+① 唐書曰 “蘇世長, 雍州武功人. 祖彤, 後魏散騎常侍, 父振, 周宕州刺史. 世長十餘歲, 上書言事, 周武帝問 ‘讀何書?’ 對曰 ‘孝經․論語.’ 王世充僭號, 署行臺僕射, 世充平, 以漢南歸國.”한대 是日大獲하여 陳禽於旌門이라 高宗 顧謂群臣曰
今日畋 樂乎아하니
蘇對曰
陛下畋獵하여 薄廢萬機하여 不滿十旬하니 未爲大樂이니이다하다
高宗 色變하고 旣而 笑曰
狂態發邪아하니
對曰
臣爲私計則狂이어니와 爲陛下國計則忠이니이다하다
【頭註】
劉云 “世長是神宗時人, 人言高宗者, 誤也.”


11-40 【소세장蘇世長이 〈천자를〉 따라 고릉高陵으로 사냥을 갔는데,注+① ≪구당서舊唐書≫ 〈소세장열전蘇世長列傳〉에 말하였다. “소세장은 옹주雍州 무공武功 사람이다. 조부 소동蘇彤후위後魏산기상시散騎常侍를, 부친 소진蘇振북주北周탕주자사宕州刺史를 역임하였다. 소세장이 10여 세에 글을 올려 정사에 대해 언급하자,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가 ‘무슨 책을 읽었느냐?’ 물으니, ‘≪효경孝經≫과 ≪논어論語≫입니다.’ 대답하였다. 이 제왕을 참칭僭稱했을 때 〈소세장을〉 행대복야行臺僕射로 임명하였고, 왕세충이 〈이세민李世民에게〉 평정된 뒤에 한남漢南지역을 가지고 당나라에 귀순하였다.” 이날 사냥감을 많이 잡아서 에 진열하였다. 〈이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오늘 사냥이 즐거웠소?”
소세장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사냥하시느라 만기萬機(모든 국정國政)를 폐지하여 100일도 채우지 못하셨으니, 큰 즐거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소세장蘇世長소세장蘇世長
고종은 얼굴빛이 변했는데, 잠시 뒤에 웃으며 말하였다.
“미친 짓이 발작했소?”
〈소세장이〉 대답하였다
“저의 개인에 대해 생각한다면 미쳤지만, 폐하의 국가에 대해 생각한다면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두주頭註
유진옹劉辰翁소세장蘇世長고종高宗 시기의 인물이 아니니, 지금 〈본문에서〉 고종이라고 말한 것은 오류이다.


역주
역주1 王世充 : ?~621. 隋나라의 장수이다. 수나라 말기에 煬帝가 宇文化及에게 피살당하자 皇孫인 楊侗을 황제로 옹립하고 국정을 농단하다가 619년에 황제를 폐위하고 스스로 즉위하여 국호를 鄭, 연호를 開明이라 하여 河南 일대를 지배하였으나, 621년에 秦王 李世民(唐太宗)에게 패배하였다.(≪隋書≫ 〈王充列傳〉)
역주2 旌門 : 제왕이 出行하면 장막을 설치하여 行宮으로 사용하는데, 행궁 앞에 깃발을 세워 문으로 삼은 것이다.
역주3 高宗 : ≪世說補考≫에서 “蘇世長은 唐 太宗 貞觀 연간(627~649) 초기에 사망했다. 사냥을 따라 갔다가 간언한 것은 그가 高祖 武德 연간(618~626)에 諫議大夫 신분이었을 때의 일이니 고조라고 해야 한다.” 했는데, ≪世說箋本≫에서는 “고조를 옛날에는 고종이라고 했다.” 하였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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