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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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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郡陳遺 家至孝하다 母好食鐺底焦飯하니 作郡主簿 恒裝一囊이라가 每煮食 輒貯錄焦飯하여 歸以遺母하다
後值孫恩賊 出吳郡注+① 晉安帝紀曰 “孫恩, 一名靈秀, 瑯琊人. 叔父泰, 事五斗米道, 以謀叛誅. 恩逸逃於海上, 聚衆十萬人, 攻沒郡縣. 後臨海太守斬首, 送之.”할새 袁府君注+② 山松, 別見. 卽日便征하니 已聚斂하여 得數斗焦飯이나 歸家하고 遂帶以從軍하다 戰於滬瀆敗 軍人潰散하여 逃走山澤이라가 皆多饑死 獨以焦飯으로 得活하니 時人 以爲純孝之報也라하다
【頭註】
李云 “此孝子眞.”
劉云 “如此細事, 寫得宛至, 更有不厭.”


1-53 오군吳郡진유陳遺 모친이 냄비 바닥의 누룽지를 좋아하였다. 진유가 군주부郡主簿가 되었을 때 늘 자루 하나를 가지고 다니다가 밥을 할 때마다 누룽지를 모아 담았다가 돌아와 모친에게 드렸다.
후에 역적 손은孫恩오군吳郡에 출몰하였을 때注+① ≪진안제기晉安帝紀≫에 말하였다. “손은孫恩은 일명 손령수孫靈秀이며 낭야瑯琊 사람이다. 숙부 손태孫泰를 섬기다가 모반죄로 죽임을 당했다. 손은이 바닷가로 달아나 무리 10만여 인을 모아 군현郡縣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후에 임해태수臨海太守 신병辛昺에게 참수斬首되어 보내졌다.” (원산송袁山松)이注+원산송袁山松은 따로 보인다. 그날로 출정하니, 진유가 이미 몇 말의 누룽지를 모아두었으나 미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그대로 가지고 종군從軍하였다. 호독滬瀆에서의 전투에서 패하여 군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산과 늪으로 도망하였다가 대부분 굶주려 죽었으나 진유만은 누룽지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지극한 효성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하였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이 효자는 진실되다.
유신옹劉辰翁:이와 같이 세세한 일을 완연하고 지극하게 묘사하여 더욱 싫증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집에……효성스러웠다 : 저본에는 ‘家至孝’로 되어 있으나, ‘家’ 앞에 ‘在’가 탈락된 듯하다.(≪世說啓微≫) 집에 있었을 때란 아직 벼슬하지 않았을 때를 말한다.(≪世說講義≫)
역주2 五斗米道 : 後漢 말기에 張陵이 四川 지방에서 창시한 종교, 또는 그 교단이다. 장릉은 사천 鵠鳴山에서 도를 닦아 道書를 만들어 전파하였는데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 그 도를 믿는 자는 쌀 5말[斗]을 바쳤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들을 ‘米賊’이라 하고 그 도를 ‘오두미도’라 불렀다. 長吏를 두지 않고, 최고 지도자를 ‘師君’이라 하고 중간 지도자를 ‘祭酒’라 하여 처음 도를 배우는 자인 ‘鬼卒’을 다스리게 하였다. 장릉이 죽자 그 아들 張衡, 손자 張魯가 이끌었으며, 張角에 이르러 黃巾賊이 되어 後漢 멸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三國志≫ 〈魏志 長魯傳〉)
역주3 袁府君 : 東晉 吳郡太守 袁山松(?∼401)을 가리킨다. 府君은 태수를 말한다. 孫恩의 난에서 죽었다.
역주4 : 安永本에는 ‘寇’로 되어 있다.
역주5 辛昺 : 安永本에는 ‘辛景’으로 되어 있다.
역주6 未展 : ‘未及’과 같다.(≪世說新語箋疏≫)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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