阮光祿이 在剡에 曾有好車한대 借者無不皆給하다 有人葬母에 意欲借而不敢言하니 阮後聞之하고 歎曰
遂焚之
注+① 阮光祿別傳曰 “裕, 字思曠, 陳留尉氏人. 祖略, 齊國內史, 父顗, 汝南太守. 裕淹通有理識. 累遷侍中. 以疾築室會稽剡山, 徵金紫光祿大夫, 不就. 年六十一卒.”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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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록阮光祿(
원유阮裕)이
섬산剡山에 있을 때 좋은 수레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빌리려는 자가 있으면 모두 빌려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모친을 장사 지낼 때 내심 그 수레를 빌리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완광록이 나중에 그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원광록阮光祿
“내가 수레를 가지고 있으나 사람들이 감히 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 수레로 무엇을 하겠는가.”
마침내 그 수레를 불태웠다.
注+① 〈원광록별전阮光祿別傳〉에 말하였다. “원유阮裕는 자字가 사광思曠이고 진류陳留 위지尉氏 사람이다. 조부인 원략阮略은 제국내사齊國內史였고, 부친인 원의阮顗는 여남태수汝南太守였다. 완유는 서적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다스리는 식견이 있었다. 여러 번 승진하여 시중侍中이 되었다. 병이 들어 회계會稽 섬산剡山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61세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