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8 【보補】 유첩경劉捷卿(유신劉迅)이 도성에 있을 때注+① 송기宋祁의 ≪신당서新唐書≫에 말했다. “유신劉迅은 자字가 첩경捷卿으로 유지기劉知幾의 다섯째 아들이다. 경조공조참군사京兆功曹參軍事를 지냈다. 상원上元 연간(760~761)에 〈안사安史의 난 때문에〉 안강安康으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한번은 병으로 드러눕자 방태위房太尉(방관房琯)가 듣고서 걱정이 되어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는 빈객과 수행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유첩경에게 〈혹시라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더 이상 신령神靈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注+② 유후劉昫의 ≪구당서舊唐書≫에 말했다. “방관房琯은 자字가 차율次律이고 하남河南 사람으로 평장사平章事방융房融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태도가 침착하고 단정했다. 천성적으로 은둔하기를 좋아하여 동평東平의 여향呂向과 함께 육혼陸渾의 이양산伊陽山에서 10여 년 동안 독서하였다. 현종玄宗이 촉蜀땅에 거둥했을 때 이부상서동평장사吏部尙書同平章事에 제수되었다. 숙종肅宗이 즉위하고 나서 상소를 올려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안사安史의 반란군과〉 싸우겠다고 자청했는데 진도사陳濤斜에서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