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 원언백袁彥伯(원굉袁宏)이 사안남謝安南(사봉謝奉)의注+① 사봉謝奉은 따로 보인다.사마司馬가 되었을 때 도하都下(도성都城)의 여러 사람들이 뇌향瀨鄉까지 전송하였다. 장차 이별하려고 하자 벌써 스스로 슬픈 마음이 일어 탄식하며 말하였다.
“강산江山이 까마득히 끝이 없으니 마치 만 리는 가야 할 모양이로구나.”注+② ≪속진양추續晉陽秋≫에 말하였다. “원굉袁宏은 자字가 언백彦伯이고 진군陳郡 사람으로 위魏나라 낭중령郞中令원환袁煥의 6세손世孫이다. 조부 원유袁猷는 시중侍中이었고 부친 원욱袁朂은 임여현령臨汝縣令이었다. 원굉은 건위참군建威參軍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안남사마安南司馬와
이 되었다. 태부太傅사안謝安은 원굉의 기지와 언변이 민첩함을 높이 사서, 원굉이 이부랑吏部郞에서 동양군東陽郡의 태수로 나아가자 이에 야정冶亭에서 송별하니 당시의 현자賢者들이 모두 모였다. 사안은 갑작스레 그를 시험해보고자 손을 잡고 장차 이별하려고 할 때에 좌우를 둘러보고는 부채 하나를 집어주자, 원굉은 바로 이에 답하여 ‘마땅히 인풍仁風을 받들어 선양하여 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겠습니다.’라고 하니, 좌중의 모든 이가 대답이 적합하면서도 기민함에 감탄하였다. 성품이 올곧았기에 벼슬이 높지 못했다. 동양군에서 죽었다.”
注
【두주頭註】
◦ 유진옹劉辰翁:슬프고 침울하여 넋을 잃게 만든다. 단지 감정을 쏟아낸 말일 뿐이며, 말을 잘한 것은 아니다.
역주
역주1記室 :
관직명이다. 長官 밑에서 문장과 기록을 담당하였으며 記室督이나 記室參軍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