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길 소나무처럼 높고 무성하니, 울퉁불퉁 옹이가 있긴 하지만 큰 집을 지을 때 마룻대나 대들보로 쓸 만하다.”注+① ≪진제공찬晉諸公贊≫에 말하였다. “화교和嶠는 늘 외삼촌 하후현夏侯玄의 사람됨을 흠모하였기에 조사朝士 중에 홀로 떨어져 있으며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그의 강직한 절조를 꺼렸다.”
역주
역주1和嶠 :
본서와 ≪晉書≫ 〈和嶠傳〉에는 ‘和嶠’로 되어 있으나 ≪진서≫ 〈庾敱傳〉과 〈溫嶠傳〉에는 ‘溫嶠’라 하였다. 화교는 유애보다 선배이고 이미 현달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유애가 품평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이 고사의 인물은 ‘온교’가 맞을 듯하다. ≪世說音釋≫, ≪世說新語箋疏≫(余嘉錫)의 견해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