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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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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討逆注+① 吳志曰 “孫策, 字伯符. 曹操表爲討逆將軍.” 旣定豫章하고하여 饗將士 謂虞仲翔注+② 吳志曰 “虞翻, 字仲翔, 會稽餘姚人. 初爲王朗功曹.” 吳書曰 “翻少好學, 有髙志. 年十二, 客有候其兄者, 不過翻. 翻追與書曰 ‘僕聞虎魄不取腐芥, 磁石不受曲針. 過而不存, 不亦宜乎.’ 客得書奇之.”
再至壽春하여 見馬日磾注+③ 三輔決錄曰 “日磾, 字翁叔, 馬融族孫. 獻帝時大傅, 與蔡邕․楊賜․堂溪典同校定石經.”하고 及與中州士大夫 言我東方人多才耳 恨學問不博하여 語議有所不及이라하니 孤意猶謂未爾 博學洽聞이라 故前欲令卿一詣許하여 交見朝士하여 以折中國妄語兒 卿不願行하면 便使張子網注+④ 吳志曰 “張紘, 字子綱, 廣陵人. 少遊學京師, 後避地江東. 孫策創業, 遂委質焉. 與張昭並與參謀, 常令一人居守, 一人征討.” 江表傳曰 “權與群臣多呼其字, 唯呼張昭曰‘張公’, 張紘曰‘東部’, 所以重二人也.”이나 恐子綱不能結兒輩舌也注+⑤ 吳書曰 “紘見柟榴枕, 愛其文, 作賦. 陳琳在北見之, 以示人曰 ‘此吾鄉里張子綱所作.’ 後紘見陳琳作武賦․應機論, 與琳書, 深歎美之. 琳答曰 ‘自僕在河北, 與天下隔. 此間率少於文章, 易爲雄伯, 故使僕受此過差之譚. 今景興在此, 足下與子布在彼, 所謂小巫見大巫, 神氣盡矣.’”니라


3-14【손토역孫討逆(손책孫策)이注+①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손책전孫策傳〉에 말하였다. “손책孫策백부伯符이다. 조조曹操표주表奏하여 토역장군討逆將軍으로 삼았다.” 예장豫章을 평정하고 돌아와서는 장수와 군사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베풀면서 우중상虞仲翔(우번虞翻)에게注+②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우번전虞翻傳〉에 말하였다. “우번虞翻중상仲翔이고 회계會稽 여요餘姚 사람이다. 처음에는 왕랑王朗공조功曹였다.”
오서吳書≫에 말하였다. “우번은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고 높은 뜻이 있었다. 12세에 그 형에게 인사하러 온 이 우번을 찾아오지 않자, 우번은 나중에 편지를 보냈다. ‘제가 듣건대 호박琥珀은 썩은 풀을 취하지 아니하고, 자석磁石은 굽은 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들르면서 찾아주지 않으신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 편지를 받고 기특奇特하게 여겼다.”
말하였다.
손책孫策손책孫策
“내가 예전에 수춘壽春에 두 번 가서 마일제馬日磾를 보고注+③ ≪삼보결록三輔決錄≫에 말하였다. “마일제馬日磾옹숙翁叔으로 마융馬融족손族孫이다. 헌제獻帝(유협劉協) 때의 대부大傅로서 채옹蔡邕양사楊賜당계전堂溪典과 함께 을 같이 교정하였다.” 중원中原의 사대부와 함께 만났을 때에, 〈그들은〉 우리 동방 사람들은 재주가 많지만 안타깝게도 학문이 넓지 못해 담론談論을 나눌 때에 따라오지 못하는 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 생각은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경은 박학다식하기 때문에 전부터 경을 허도許都(허창許昌)에 한번 보내 조정의 인사들과 교류하고 만나서 중원의 막말하는 자들을 꺾어버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경이 가기를 원치 않으면 바로 장자망張子網(장굉張紘)에게 시키겠지만注+④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장굉전張紘傳〉에 말하였다. “장굉張紘자강子綱이고 광릉廣陵 사람이다. 어려서 경사京師에서 유학하였다. 뒤에 강동江東에서 은거하고 있다가, 손책孫策이 왕조를 세우자 마침내 몸을 의탁하였다. 장소張昭와 더불어 함께 모의에 참여했는데, 〈손책은〉 항상 둘 중 한 사람은 남아서 지키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정벌에 나서도록 하였다.”
강표전江表傳≫에 말하였다. “손권孫權은 신하들과 있으면서 대부분 그들을 로 불렀는데, 오직 장소張昭를 ‘장공張公’으로, 장굉張紘을 ‘동부東部’라 불렀으니, 두 사람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자강이 그자들의 혀를 묶어버리지 못할까 염려됩니다.”注+⑤ ≪오서吳書≫에 말하였다. “장굉張紘이 녹나무와 석류나무로 만든 베개를 보고는 그 무늬를 사랑하여 를 지었다. 진림陳琳이 북쪽에 있을 때 그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나의 동향 사람인 장자강張子綱이 지은 것입니다.’ 뒤에 장굉이 진림이 지은 〈무고부武庫賦〉와 〈응기론應機論〉을 보고 진림에게 서신을 보내 크게 칭송하였다. 진림이 답장을 보내 ‘제가 하북河北에 있고부터 천하天下와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대체로 문장가가 적어서 걸출한 인물이 되기 쉽기 때문에 제가 이런 과분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경흥景興(왕랑王郞)이 이곳에 있고 그대와 자포子布(장소張昭)는 저쪽에 있으니, 이른바 「작은 무당이 큰 무당을 보자 신기神氣가 다한다.」는 격입니다.’라고 하였다.”
우번虞翻우번虞翻


역주
역주1 石經 : 돌에 새긴 유가의 경전이다.
역주2 (庳)[庫] : 저본에는 ‘庳’로 되어 있으나, 安永本과 ≪三國志≫ 〈吳書 張紘傳〉 裴松之의 注에 의거하여 ‘庫’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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