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慶孫
이 在太傅府
할새 于時
에 人士
가 多爲所構
로되 惟庾子嵩
은 縱心事外
하여 無跡可間
이라 後
에 以其性儉家富
라하여 說太傅
하여 令換千萬
하니 冀其有吝
하면 於此可乘
注+① 晉陽秋曰 “劉輿, 字慶孫, 中山人. 有豪俠才筭, 善交結. 爲范陽王虓所暱, 虓薨, 太傅召之, 大相委仗, 用爲長史.” 八王故事曰 “東海王越, 字元超, 高密王泰長子. 少尙布衣之操, 爲中外所歸, 累遷司空․太傅.”이라
太傅가 於衆坐中에 問庾한대 庾가 時頹然已醉하여 幘墜几上하니 以頭就穿取하고 徐答云
12-14
유경손劉慶孫(
유여劉輿)이
태부太傅(
사마월司馬越)의 막부에 있었다. 당시에
인사人士 가운데 무함을 받은 사람이 많았으나, 오직
유자숭庾子嵩(
유애庾敱)만은 세상사 바깥에 마음을 마음껏 노닐어 트집을 잡을 행적이 없었다. 이후에 〈유경손은〉 유자숭의 성품이 검소하고 집안이 부유하다는 이유로 태부를 설득하여 천만 냥을 빌려오라고 하였으니, 유자숭이 인색함을 보이면 이에 능멸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注+① 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유여劉輿는 자字가 경손慶孫으로, 중산中山 사람이다. 호탕하고 의협심이 있으며 재략이 있으며 교제를 잘하였다. 범양왕范陽王 사마효司馬虓가 깊이 친애했는데, 사마효가 세상을 떠나자 태부太傅(사마월司馬越)가 불러 그를 크게 의지하고 장사長史로 기용하였다.”
노침盧綝의 ≪팔왕고사八王故事≫에 말하였다. “동해왕東海王 사마월은 자字가 원초元超로, 고밀왕高密王 사마태司馬泰의 맏아들이다. 젊을 때부터 를 중시하여 〈조정의〉 안팎의 인물이 귀의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사공司空과 태부가 되었다.”
태부가 여러 사람이 앉은 가운데 유자숭에게 〈빌려 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유자숭은 그때 쓰러질 듯 만취하여 두건이 안석 위에 떨어지자 머리를 들이밀어서 쓰고는 천천히 대답하였다.
“
하관下官(저)의 집에는 본래
이 있으니 공이 마음대로 가져가시지요.”
이에 〈유경손이〉 마침내 감복하였다. 이후에 어떤 사람이 유자숭에게 이 일을 언급하자, 유자숭이 말하였다.
注
◦ 유진옹劉辰翁:〈본문의 영환천만令換千萬〉의 ‘환換’은 ‘다른 사람에게 빌린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