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石
은 故相爲雄
이라 阿萬
은 當裂眼争邪
注+① 中興書曰 “萬器量不及安石, 雖居藩任, 安在私門之時, 名稱居萬上也.”리라하다
18-32 왕우군王右軍(왕희지王羲之)이 허현도許玄度(허순許詢)에게 물었다.
“그대는 사안석謝安石(사안謝安)과 비교해 어떠한지 스스로 말해보시오?”
허현도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왕우군이 바로 말했다.
“사안석은 진실로 〈그대와〉 나란히 뛰어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만阿萬(
사만謝萬)은 당연히 성난 눈초리를 하고 논쟁하겠지요.”
注+① ≪중흥서中興書≫에 말했다. “사만謝萬은 기량器量이 사안석謝安石(사안謝安)에게 미치지 못했으니, 비록 변방을 방어하는 〈중요한〉 직임에 있고 사안이 집에 있을 때도 〈사안의〉 명성이 사만보다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