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武子
注+① 晉諸公贊曰 “王濟, 字武子, 太原晉陽人, 司徒渾第二子也. 有儁才, 能淸言. 起家中書郞, 終太僕.”와 孫子荊
注+② 文士傳曰 “孫楚, 字子荊, 太原中都人也.” 晉陽秋曰 “楚, 驃騎將軍資之孫, 南陽太守宏之子. 鄕人王濟, 豪俊公子, 爲本州大中正. 訪問爲鄕里品狀, 濟曰 ‘此人非評所能名, 吾自狀之.’ 曰 ‘天才英特, 亮拔不群.’ 仕至馮翊太守.”이 各言其土地人物之美
하다 王云
其地는 坦而平하고 其水는 淡而淸하니 其人이 廉且貞이라하고
其山
은 嶵巍以嵯峩
하고 其水
는 而揚波
하니 其人
이 磊砢而英多
注+③ 按三秦記․語林載蜀人伊籍稱吳土地人物, 與此語同.라하다
注
王云 “注是也. 吳蜀當此語, 是本色. 按王孫同爲太原人, 不當土風之異如此.”
4-7
왕무자王武子(
왕제王濟)와
注+① ≪진제공찬晉諸公贊≫에 말하였다. “왕제王濟는 자字가 무자武子이고 태원太原 진양晉陽 사람으로, 사도司徒 왕혼王渾의 둘째 아들이다. 뛰어난 재주가 있었고 고아한 담론을 잘하였다. 중서랑中書郞으로 벼슬을 시작했으며 태복太僕으로 있다가 죽었다.” 손자형孫子荊(
손초孫楚)이
注+② ≪문사전文士傳≫에 말하였다. “손초孫楚는 자字가 자형子荊이고 태원太原 중도中都 사람이다.”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손초孫楚는 표기장군驃騎將軍 손자孫資의 손자이고 남양태수南陽太守 손굉孫宏의 아들이다. 같은 고향 사람인 왕제王濟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공자公子로 본주本州의 이 되었다. 이 향리鄕里의 품장品狀(인물의 품행品行을 기술한 글)을 작성하자, 왕제王濟가 ‘이 사람(손초)은 그대가 품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직접 작성하겠다.’라고 하고는 ‘천재天才로 영특英特하며 출중하여 평범하지 않다.”라고 하였다. 벼슬이 풍익태수馮翊太守에 이르렀다.” 각기 〈자기 고장의〉 토지와 인물들의 훌륭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왕무자가 말했다.
“그 땅은 평탄하고 물은 맑으니, 사람들이 청렴하고 곧습니다.”
“그 산은 높아 우뚝하고 물은 넘실넘실 흐르면서 물결이 높게 이니, 사람들이 호방하고 뛰어납니다.”
注+③ 살펴보건대 ≪삼진기三秦記≫와 ≪어림語林≫에 촉인蜀人 이적伊籍이 오吳 지역의 토지와 인물을 칭찬한 것이 실려 있는데, 이 말과 같다.
注
◦ 왕세무王世懋:주석의 말이 옳다. 오吳와 촉蜀이 여기의 말에 부합하니, 이것이 〈그곳의〉 본래의 면목이다. 살펴보건대 왕제王濟와 손초孫楚는 동일하게 태원太原 사람이니, 풍토가 이렇게 다른 것은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