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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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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言語 下
殷仲文注+① 續晉陽秋曰 “仲文, 字仲文, 陳郡人. 祖融, 太常, 父康, 吳興太守. 仲文爲桓玄咨議參軍. 時王謐見禮而不親, 卞範之被親而少禮, 其寵遇隆重, 兼於王․卞矣. 玄簒位, 以佐命親貴. 輿馬器服, 窮極綺麗, 妓妾數十, 絲竹不絶音. 性甚貪吝, 多納賄賂, 家累千金, 常若不足. 玄敗, 先投義軍, 遷侍中․尙書. 以罪伏誅.” 勸宋武帝畜伎하니 帝曰
我不解聲이라하다
仲文曰
但畜이면 自解리라하니
帝曰
畏解 故不畜注+② 宋書曰 “帝, 姓劉氏, 諱裕, 受晉禪. 淸簡寡慾, 未嘗視珠玉輿馬之餙, 後庭無紈綺絲竹之音. 在位三年.”이라하다
【頭註】
李云 “裕答更好.”


5. 언어 하
5-1【은중문殷仲文注+① ≪속진양추續晉陽秋≫에 말하였다. “은중문殷仲文중문仲文으로 진군陳郡 사람이다. 조부 은융殷融태상太常이었고, 부친 은강殷康오흥태수吳興太守였다. 은중문은 환현桓玄자의참군咨議參軍이 되었다. 당시 왕밀王謐은 예우를 받았지만 친하지 못했고 변범지卞範之는 친하게 여겨졌지만 예우가 덜했는데, 은중문에 대한 총애와 대우는 왕밀과 변범지를 합친 것과 같을 정도로 융성했다. 환현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할 때에 도운 일로 가까워지고 지위가 높아졌다. 수레․말․그릇․의복은 지극히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기첩妓妾이 수십 명이었고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품이 매우 인색하여 뇌물을 많이 받아 집에 천금千金을 쌓아두고도 늘 부족하게 여겼다. 환현이 패배하자 먼저 의군義軍(유유劉裕의 군대)에 투항하였고, 시중侍中상서尙書를 지냈다. 죄로 인해 복주伏誅되었다.” 무제武帝(유유劉裕)에게 가기歌妓를 두라고 권하자 무제가 말했다.
송宋 무제武帝송宋 무제武帝
“나는 음악을 잘 모르오.”
은중문이 말했다.
“가기를 두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무제가 말했다.
“잘 알게 될까봐 두지 않는 것이오.”注+② ≪송서宋書≫에 말하였다. “황제의 유씨劉氏이고 나라로부터 선양禪讓받았다. 청렴하고 검약하며 욕심이 적어 주옥珠玉여마輿馬 같은 사치품을 본 적이 없으며 후정後庭에는 가기歌妓와 음악의 소리가 없었다. 3년간 재위하였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유유劉裕( 무제武帝)의 답이 더욱 좋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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