顧榮이 在洛陽에 嘗應人請한대 覺行炙人이 有欲炙之色하고 因輟己施焉하다 同坐嗤之하니 榮曰
後
에 遭亂渡江
할새 每經危急
에 常有一人左右己
한대 問其所以
하니 乃受炙人也
注+① 文士傳曰 “榮, 字彥先, 吳郡人. 其先越王勾之支庶, 封於顧邑, 子孫遂氏焉. 世爲呉著姓, 大父雍, 吳丞相, 父穆, 宜都守. 榮, 少朗俊機警, 風穎標徹, 歷廷尉正. 曾在省與同僚共飮, 見行炙者有異於常僕, 乃割炙以噉之. 後趙王倫篡位, 其子爲中領軍, 逼用榮爲長史. 及倫誅, 榮亦被執, 凡受戮等輩十有餘人. 或有救榮者, 問其故, 曰 ‘某, 省中受炙臣也.’ 榮乃悟而嘆曰 ‘一餐之惠, 恩今不忘, 古人豈虛言哉.’”라
1-38
고영顧榮이
낙양洛陽에 있을 때 어느 날 어떤 사람의 초청에 응하여 갔는데, 구이를 나르는 사람이 구이를 먹고 싶어 하는 기색이 있는 것을 알아채고 자기가 먹으려던 고기를 그에게 주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비웃자, 고영이 말하였다.
고영顧榮
“어찌 하루 종일 〈고기를〉 만지면서 그 맛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후에 난리를 만나 강을 건널 때 매번 위급한 일을 만나면 늘 어떤 사람이 자신을 도와주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바로 그때 구이를 받아먹었던 사람이었다.
注+① 에 말하였다. “고영顧榮은 자字가 언선彥先이고, 오군吳郡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후손인데 고읍顧邑에 봉해져 자손들이 마침내 〈읍명邑名으로〉 성씨姓氏를 삼았다. 대대로 오吳나라의 명문가가 되어 대부大父 고옹顧雍은 오나라의 승상을 지냈고, 부친 고목顧穆은 의도태수宜都太守였다. 고영은 젊어서부터 명철하고 민첩하였으며 풍채가 빼어나고 눈에 띄었으며, 정위정廷尉正을 역임하였다. 한번은 성省에 있을 때 동료와 같이 음식을 먹는데 구이를 나르는 자가 다른 종과 남다른 것을 보고 고기를 잘라주어 먹게 하였다. 후에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이 찬탈하고 그 아들이 중령군中領軍이 되자 고영을 핍박하여 장사長史에 기용하였다. 사마륜이 주살되자 고영 역시 붙잡혔는데 같은 무리 중에 죽임을 당한 자가 10여 인이나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가 고영을 구제해주어 그 이유를 물으니 ‘저는 성에서 구이를 받았던 신하입니다.’ 하였다. 고영이 마침내 기억해내고는 ’라고 감탄하였다.”
注
◦ 유응등劉應登:청하였다는 것은 술과 밥으로 초청한 것을 말한다.
注
◦ 유진옹劉辰翁:은혜를 아는 이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