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公
이 在荊州
에 全欲以德
으로 被江漢
하고 恥以威刑
으로 肅物
注+① 溫别傳曰 “溫, 以永和元年, 自徐州遷荊州刺史. 在州寛和, 百姓安之.”이라 令史受杖
에 正從朱衣上過
하니 桓式
이 年少
한대 從外來
注+② 式, 桓歆小字也. 桓氏譜曰 “歆, 字叔道, 溫第三子. 仕至尙書.”하여 云
向從閣下過라가 見令史受杖한대 上捎雲根하고 下拂地足이러이다하니
6-19
환공桓公(
환온桓溫)이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있을 적에 오로지
덕德으로
장강長江과
한수漢水 지역을 다스리고자 하였고 위엄과 형벌로 다스리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注+① 〈환온별전桓溫別傳〉에 말하였다. “환온桓溫은 영화永和 원년(345)에 서주徐州에서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옮겼다. 주州에 있을 때 관대하고 온화하여 백성들이 편안하였다.” 영사令史가
장杖을 맞는데 단지 관복 위를 스치는 정도이자, 나이 어린
환식桓式(
환흠桓歆)이 밖에서 돌아와
注+② 식式은 환흠桓歆의 어릴 때 이름이다.
≪환씨보桓氏譜≫에 “환흠桓歆은 자字가 숙도叔道이고 환온桓溫의 셋째 아들이다. 벼슬이 상서尙書에 이르렀다.” 하였다. 말하였다.
“아까 전각 아래를 지나다가 영사가 장을 맞는 것을 보았는데, 위로는 구름의 뿌리를 치고 아래로는 땅의 발을 때리더군요.”
〈장杖이 몸에〉 닿지 않은 것을 비꼰 것이었으나 환공은 말하였다.
“나는 그것도 〈처벌이〉 무거울까 걱정이다.”